대선 후보들이 자신들의 정략적 이해에 따라 합동토론회 참석 여부를 판단하고 있어 국민 알권리와 유권자 선택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법정 선거운동 기간 이전의 합동토론회는 불참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가운데 정몽준 후보마저 “1위 후보가 나오지 않는 토론회는 의미가 없다”며 미온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어 선거운동 기간 이전의 합동토론회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정 후보 캠프측은 최근 “이 후보가 참여하는 합동토론만 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유권자의 판단을 돕기 위해 모든 TV토론회에 참석하겠다던 기존 방침을 번복했다. 정 후보쪽의 박호진 보좌관은 “1위 후보가 빠진 합동토론은 의미가 없다고 본다”며 “MBC와 기자협회 합동토론의 경우 이회창 후보가 불참한다면 우리도 참석 여부를 다시 검토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 후보측도 현재 법정 선거운동 기간 동안 TV토론위원회가 주관하는 합동토론 3회만 출연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 후보와 정 후보의 이같은 방침에 따라 법정 선거운동 기간 전 합동토론회를 준비하고 있던 방송사와 단체들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회창 후보와 정몽준 후보가 참석하지 않을 경우 합동토론의 내용과 의미가 크게 퇴색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MBC의 경우 한국언론학회·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 공동으로 오는 31일과 11월 중순 두차례 대선 후보 3자 합동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이회창 후보와 정몽준 후보의 이같은 입장 때문에 일정을 연기했다. 기자협회와 한국정책학회도 각각 다음달 7일과 25일 대선 후보 합동토론회를 준비하고 있으나 후보 4명이 모두 참석하는 합동토론회가 열릴지는 불투명한 상태다.
KBS는 선거운동 기간 전의 합동토론회는 사실상 어렵다고 판단, 11월 6일부터 시민들이 패널로 참여하는 개별토론을 개최할 예정이다. SBS는 지속적으로 후보들에게 합동토론 출연을 요청하고 있으나 큰 기대는 하지 않는 분위기다. 한 방송사 보도국 간부는 “97년도에도 선거운동 이전의 합동토론은 이뤄지지 못했다. 아무래도 유리한 후보가 합동토론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며 “방송사 입장에서는 합동토론을 원하지만 강제나 의무 조항이 아니기 때문에 후보들이 거부하면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일부 대선 후보들이이처럼 자신들의 유불리에 따라 TV토론을 기피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미디어선거의 의미가 훼손되고 국민 알권리가 침해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법정 토론 3회만으로는 후보의 자질 판단과 철저한 정책 검증이 미흡할 수 있기 때문에 선거운동 기간 전에 방송사별로 최소한 1∼2회 정도 합동토론을 개최해야 한다는 여론이 그동안 시민단체와 학계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효성 성균관대 신방과 교수는 “대선 후보자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자신을 알리고 유권자들은 이를 통해 후보 자질과 정책을 검증할 필요성이 있는데 미디어정치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TV토론을 후보들이 거부한다는 것은 국민 검증을 받지 않겠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며 “유권자가 후보자를 판단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드는 것은 후보들의 의무와 책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