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국의 장관이, 매일 아침 라디오를 통해 이 땅의 불의와 부패와 구습(舊習)을 질타하던 그가, 감독하고 견제해야 마땅할 대기업 관계자들로부터 돈 봉투를 받는 모습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문제는 액수와 사용처였다.
수백만 원 정도였다면 '격려금'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액수가 크더라도 환경단체 기부, 결식아동 지원 등에 썼다면 문제가 아니었다. 금액을 확인하는 데 특히 애를 먹었다.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장관의 금품 수수에 관한 법률적 검토, 세금문제 등에 관한 부속 취재를 선행한 것은 이때문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이런 취재가 기사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됐다.
그의 장관직 사퇴 이후 이 문제와 관련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읽었다. 요컨대 '여자이고 연극인 출신이라 언론이 가혹하게 몰아쳐 마녀사냥을 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갓 취임한 현역 장관이 ▷업무특성상 치열한 긴장관계에 있는 대기업 관계자들로부터 ▷2400만 원이라는 거액을 선뜻 받아 ▷개인용도에 썼다는 이 사건의 본질은 '여성장관' '연극인 출신' '마녀 사냥'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일이다.
'한국에서 여자가 장관하기 너무 힘들더라'는 말엔 공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자가 장관하기 힘들다는 일반론은 거액 수수 및 공직 의식 부족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특히 이 문제와 관련해 페미니즘 운운하며 박식한 척, 여성에 사려 깊은 척 하는 짓은 아예 페미니즘에 대한 모독이다.
현역 장관이 재계로부터 웬만한 봉급생활자의 한 해 연봉보다 많은 돈을 받아 사용했다는 사실을 취재하고도 그가 여자이고 연극인 출신이라는 이유로 기사화하지 말아야 옳은 일이란 말인가. 그게 기자고 신문인가.
그는 다시 연극 무대로 돌아갈 것이라고 한다. 어찌됐든 이번 일로 받은 충격이 작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을 대표하는 좋은 배우 중의 하나인 그가 그 충격을 보다 훌륭한 연기의 밑거름으로 승화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