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기자칼럼]

헛똑똑이

이승재  2002.10.23 11:32:22

기사프린트

문화일보 경제부 기자



새벽별이 참 보기 좋은 요즘 내 머리와 귀, 다리를 자극하는 게 하나씩 있다.

머리 속에서 꿈틀대는 생각 중 하나는 ‘헛똑똑이 되지 말자’는 다짐이다. 얼마 전 경제계 출신 언론사 사장이 “기자들 중에는 ‘헛똑똑이’가 적지 않더라”고 말했다고 한다. 말인즉 “기자들이 뭐든 다 아는 척 뻥뻥 목소리는 높이지만 제대로 아는 것은 하나도 없는 족속”이라는 조소였다.

국어사전에는 없지만 ‘헛똑똑이’란 말은 기자들이 항상 경계해야할 모습임에 분명하다. 사실 “출입처를 잘 알게 되면 쓸 기사가 없다” “모를 때 특종기사가 나온다”는 말을 곧잘 듣는다. 물론 어디든 처음 갔을 때 성실하게 배우며 취재를 하면 좋은 기사가 나올 수 있다는 뜻도 되지만, 무식함을 교묘히 위장하고 합리화하기 위해 나온 말일 뿐이다. “취재 전에 공부하고 쓰기 전에 확인하자.”

요새 내 귀를 울리는 것은 ‘비가 오거나, 아님 맑거나’(Come rain or come shine)란 음악이다.

블루스기타의 제왕 비비 킹과 세계 3대 기타리스트의 하나인 에릭 클랩튼이 연주하고 노래한 이 곡은 ‘니들이 신구(新舊)조화를 알아’라고 떠 벌이는 듯 하다. 여든을 바라보는 비비 킹(흑인)의 걸쭉한 목소리, 끈적이는 기타소리가 다소 거친 50대 청년 에릭 클랩튼(백인)의 그것들과 서로 어울려 노니는 모습이 기막히다. 세대와 인종, 장르의 벽을 허문 ‘퓨전 작품’은 아름답다. 신문(방송)사 만큼 세대간, 부서간 장벽이 높고 육중한 곳이 어디 있을까. 그 장벽을 허물고 편집(보도)국의 젊은 기자들과 노련한 선배들의 ‘쿵짝’이 담긴 기사와, 패션과 정치의 만남, 연극과 경제의 조화 등 부서간 장벽을 허무는 ‘작품’들은 언제 볼(쓸) 수 있으려나.

요즘 주말마다 내 다리를 자극해 튼튼하게 만든 것은 아파트 단지 입구에 늘어선 ‘불공정 자전거’ 덕분이다. ‘신문 보시면 공짜로 드립니다’란 유혹에, 기자 이웃을 자랑스러워하는 이웃집 아저씨댁 신문함도 넘어갔다. 어느 틈엔가 낮에 오던 신문은 사라지고 아침 신문이 꽂히기 시작했다. 일본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전거를 타면서 여러 상념에 매료되는 건 환상적인 경험”이라고 말했지만, 난 그 자전거를 보기 만해도 환장할 지경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호수공원을 빠르게 걷는다. 힘찬 속보가 그 잘난 자전거 타는 것 보다 백 배 낫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