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장은 사실 말이 안 된다. 사실에 바탕을 두는 게 의당 기사일터이고, 거짓말인 줄 알았다면 쓰지 말아야 하는 게 기자의 도리가 아닌가. 그런데 현실은 꼭 교과서대로만 되는 게 아닌 것 같다. 거짓말인 줄 훤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관계자’의 말이나 ‘보도자료’를 인용해 기사를 작성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방송·연예 분야에서 대표적인 ‘거짓말 기사’를 꼽으라면 아마 연예인들의 출연료에 관한 내용이 아닐까 싶다. 얼마 전 탤런트 김혜수가 KBS 100부작 드라마 ‘장희빈’에 주연으로 발탁돼 조명을 받은 적이 있다. 대한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유명 인물인데다 그간 숱하게 TV와 영화로 제작됐던 작품인 만큼 차기 장희빈을 누가 맡을 지에 진작부터 관심이 쏠렸던 터. 물망에 올랐던 톱스타들이 장기 방영과 연기력에 따른 부담 때문에 출연을 꺼린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언론의 관심은 더욱 증폭됐다.
KBS는 캐스팅 난항을 거듭하다가 뜻밖에 김혜수라는 ‘대어’를 낚은 것이다. 이날 당장 열린 기자회견에서 KBS의 한 간부는 “김혜수의 개런티는 현재 방송계에서 최고 출연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전도연보다 많다”면서 “전도연이 회당 1000만원으로 소문이 났지만 사실은 600만원대로 알고 있다”고 공개했다. 방송국 간부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배우 출연료를 언급한 점이나 그것도 타방송사에 캐스팅된 배우의 ‘몸값’과 비교한 것은 이례적이 일이었다. 한마디로 ‘상도’에 어긋나는 ‘오버’였던 셈. 어쨌거나 이튿날 언론에는 ‘역대 최고’라는 수식어와 함께 김혜수의 출연료에 대해 700만~1000만원까지 각양각색의 추측성 기사가 쏟아졌다. 이 간부는 며칠 뒤 열린 가을개편 설명회에서 “김혜수에 대한 립서비스는 언론에 충분히 했다”며 자화자찬했다. 김혜수의 실제 ‘몸값’은 언론에 보도된 액수보다 훨씬 적다는 게 또 다른 관계자의 말이다.
사실 연예인들의 개런티는 계약 당사자를 제외하고는 알 길이 없다. 연예 기획사나 매니저들은 배우들의 몸값을 띄우기 위해 실제 액수보다 두세배는 뻥튀기해 언론에 흘리기 일쑤다. 기자들은 이 사실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쓴다.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까. 믿을 수 없으면 안 쓰면 그만 아니냐고 반문하면 할 말이 없어진다. 연예인 출연료야독자들에게는 하나의 읽을거리 이상이 아닐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좀 다른 얘기 같지만 각 업체들이 보내온 자료를 토대로 ‘부동산 분양 정보’란에 ‘걸어서 5분 거리’ ‘역세권’이란 문구를 쓸 때마다 “기분이 영 찜찜하다”는 한 부동산 담당 기자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실제로는 ‘걸어서 15분’ ‘멀리서 역이 보이는 정도’가 태반인데, 일일이 확인할 수 없으니까 자료를 보내온 업체의 양심을 믿고 쓸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어디 이 뿐이랴. 매번 비리가 터질 때마다 ‘사실무근’ ‘명예훼손’ ‘터무니없는 소리’ 등을 운운하며 일단 발뺌부터 하는 관계 당국의 입장 발표 기사는 ‘사실이 아닌 줄 알면서 쓰는 대표적인 기사’가 아닐까. 그러고 보니 기자들이 마치 요즘 유행하는, 진짜와 그럴 듯한 가짜를 가리는 형식의 TV 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한 패널처럼 느껴져 서글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