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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주장] 후보 모시지 말고 추궁하라

우리의주장  2002.11.0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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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가장 본질적인 질문으로 우리의 주장을 시작한다.

도대체 신문은, 방송은 왜 만드는가? 여러 가지 답이 있겠지만 이 자리에서 원하는 답은 ‘보여주기 위해서, 알려주기 위해서’다. 판매량이나 시청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판매량이 적어도, 시청률이 낮아도, 봐야 할 사람은 봐야 우리가 신문, 방송을 만드는 일이 의미를 갖게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요즘 언론 종사자들이 하는 행태를 보면 도무지 그럴 뜻이 없는 사람들 같다. 대선 보도 이야기다. 5년마다 닥치는 가장 중요한 국가적 대사임은 물론, 언론 장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대목’이 될 수도 있는 중요한 현안이지만, 정작 결과물들을 보면 물건 팔 뜻이 없는 상인들 같다.

신문은 오래 전부터 편파 시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방송은 좀 나을까 했더니, 아이고! 기자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방송된 대선 후보들의 TV ‘토론’- ‘토론’이라는 이름을 단 TV ‘대담‘-을 보셨는가? 모두 21번의 TV ‘토론’이 있었다. 기자 여러분들은 그 중 몇 번을 보셨는가? 보셨다면 과연 볼만하던가를 묻고 싶다. 물론 토론을 거부하는 후보가 있기 때문에 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면 질문이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 질문은 뻔했고 대답도 지루했다. 또 패널들은 무기력했다.

21번의 TV ‘토론’을 놓고 학자들이나 비평가들은 “인형극”, “드라마”라는 표현으로 언론 종사자들의 무성의를 질타했다. 기자들이 봐도 ‘성의 없는 인형극’이거나 ‘재미없는 드라마’가 많았다. 질문이 두루뭉실한 것은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대담 내용이 재미없는 것은 중요한 문제는 심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우리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다. 이건 TV토론에서 후보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의 문제다.

지금 TV들은 후보들을 ‘모시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후보들에게 공손해진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날카로운 질문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후보에 따라 질문과 추궁의 강도가 달라진다는 편파 시비도 끊이지 않고 있으니 가뜩이나 파리 날리는 가게에서 찾아온 손님까지 쫓아버리는 꼴이다.

이회창 후보 아들의 군대 문제, 노무현 후보의 장밋빛 복지공약, 정몽준 후보의 애매한 답변을 통쾌하다 싶을 정도로 물고 늘어지지 않으면 TV토론은 무의미하다. 지금처럼 ‘1분 질문, 2분 답변’의 틀에 죽어라 매달리고 질문과 토론 내용에서 점잔빼고 앉아 있다면 후보들끼리의 진짜 토론도 별로 기대할 게 없다.

이번 선거부터 새 유세방법으로 등장한 TV토론. 그러나 지금 TV는 정치인의 말 잘 듣는 도구일 뿐이다. 유권자들에게 ‘심판의 잣대’를 제공하자면 언론 종사자들이 좀 더 자신 있게 후보들을 ‘다뤄야 한다.’ 왜 그렇게 못하는가, 우리가 바로 국민의 대변인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