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한국의 노동운동만을 주제로 열린 OECD 한 위원회의 회의에 참석 차 프랑스를 방문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가 1997년 OECD에 가입한 이래 지금까지 공무원노동기본권을 억압하기 때문에 특별감시대상국이 되어 있는 이유로 그런 회의가 가능했다. 인상깊었던 것은 프랑스 내에서도 아주 보수적인 일간지 르 피가르지의 태도였다. 그들은 동양의 이방인들이 주장하는 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단지 공무원이란 이유만으로 노동조합 결성을 불온시하고, 탄압하고 대화하지 않으려 하는 한국정부의 문제를 지적하는 우리의 주장을 사진과 함께 기사화 했다.
그러나 11월초 한국의 언론상황은 판이하게 달랐다. 공무원 노동기본권을 아예 말살하려는 사용주(행자부)가 자기의 권한(입법권)을 이용해 폭압적인 법안을 만들고 이 법안이 국회 상임위에 상정되지 않자 (향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90만 공무원을 협박할 때 침묵했던 언론은 공무원들이 연가투쟁이란 생존권적 항거를 실행에 옮기자 벌떼처럼 들고일어나 공무원들을 패대기치고 있다.
한국의 보수언론은 단 한번도 공무원의 노동기본권이 그 누구에 의해서도 제약될 수 없는 헌법상 기본인권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국민정서를 핑계로 50여 년간 또다른 국민의 기본권을 유보시키는데 충실해왔다. 기억하는가? 외환위기가 닥쳐 이 나라가 휘청거릴 때 국민의 정부는 노동시장 유연화야말로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므로 정리해고를 받아들이라고 노동자에게 요구했다. 노동자들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대신 노사정위원회를 통하여 노동현안 몇 가지에 합의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공무원노동기본권 회복이었다. 이 사회적 합의의 주체가 바로 정부였다. 그런데 정권말기인 지금에 와서 정부 스스로 그 합의를 완전 묵살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있음에도 언론은 말이 없다.
보수언론은 답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1948년 대한민국 제정헌법 이후 공무원인 노동자에게 노동기본권을 법률로 보장해야하는 민주 공화국이다. 그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은 54년간 법률을 만들지 않아 그들의 기본권을 유보시켜왔다. 그런데 이 국민의 정부가 그 기본권을 아예 말살하려는 악법을 만들고 보수언론은 그 장단에 춤추고 있다. 도대체 국민의 기본권을 억압할 수있는 권리를 누구에게 위임받았는가? 국민정서를 핑계로 국민의 기본권을 마음대로 제한할 수 있다는 발상의 근거는 무엇인가? 이 물음에 답할 수 없다면 이미 언론이 아니다. 대항해야 할 권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