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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다시보기] 기자들에게 드리는 두 가지 질문

이재경 교수  2002.11.20 11:3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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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이화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11월 8일과 9일 무렵 서울에서 발행되는 주요 신문들은 국회가 수 십 개 법안을 무더기로 통과시킨 사실을 보도했다.

8일자 조선일보 A16면을 보면 7일 본회의를 통과한 45개 법률안들을 분야별로 요약해 한 문장 정도씩의 분량으로 정리했다. 9일자 중앙일보는 1면 톱기사로 69건의 법률안을 포함한 98건의 안건을 처리하던 국회본회의가 정족수 미달로 법안들을 불법 통과시키는 일이 줄줄이 발생했다고 비판했다. 국회의원들이 회의장에서 사라져 정상적으로 표결이 진행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고 고발하는 기사였다. 같은 날 저녁 TV뉴스와 전국 대부분의 신문들도 이 같은 내용을 주요기사로 다뤘다. 대부분 신문들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가 사설과 칼럼 등 의견란을 동원해 의원들의 부도덕성을 강도 높게 질타했다.

나는 의원들에 대한 언론의 비판에 전적으로 찬성한다. 세금으로 월급을 받고 사무실과 보좌관을 유지하는 의원들이 자신들이 수행하는 기본 중에도 가장 기본적인 업무인 법안 처리조차 소홀히 하는 행위는 성실하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국민 모두를 모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과는 별도로 나는 국회를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묻고 싶다. 이러한 사태에 대해 기자는 책임이 없는가. 언론은 이들을 비판하기만 하면 면책될 수 있는가.

그 뒤 계속되는 보도 양태와 논조의 흐름을 보면 기자들은 그렇다고 느끼는 듯 싶다. 그러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부도덕하고 무책임한 의원들의 이합집산에만 관심을 쏟는게 아닐까. 김아무개는 어느 당을 기웃거리고 박아무개는 누구를 만나고, 이아무개는 화가 났느니 하는 시시콜콜한 정치인 동정이 민생과 관련한 수 십 개 법안들의 개정방향에 대한 토론보다 중요하다고 결정한 것은 따지고 보면 기자들이고 언론이다. 정치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들과 그들을 지휘하는 데스크들이 국민의 관심사를 그 방향으로 몰고 갔고, 정치인들에게도 법안에 대한 연구와 협상보다 대선을 둘러싼 세력 게임이 언론의 관심을 더 끌 수 있다고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며 부추겼다는 뜻이다.

선진국 기자들은 정치기사를 법안과 정책 중심으로 쓴다. 의원 개인의 움직임은 기사거리가 되지 않은지 오래다. 의원이 법안을 발의해 동조세력을 모으고 청문회를 진행하고 해야 비로소 주요 기사의 관심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언론이 시각을 바꾸지 않으면 정치인은 행동방식을 바꾸지 않는다. 언론은 법안 처리 결과를 요약해 보도하는데 그칠 게 아니라 법안이 만들어질 때부터 국민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도록 법안에 대한 논의 과정을 치밀하게 보도해야 한다.

기자들에게 드리는 두 번째 질문은 병풍수사 보도에 관한 내용이다. 10월 26일자 신문을 보면 병풍 수사 기간은 86일에 달했다. 수사반 인원은 39명이 투입됐고 소환돼 조사를 받은 사람은 170여명에 이른다. 문제는 이렇게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도 별다른 사실이 새롭게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3개월에 걸쳐 신문과 방송이 다룬 기사 건수를 따지면 아마도 수 천 건에 달할텐데, 그리고 많은 기사들이 신문사와 방송사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매우 상반되는 보도를 해왔는데, 그러한 보도를 읽으며 따라온 국민들은 대한민국 수사당국의 무능력만을 탓하며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하는가? 왜 우리나라 언론사들은 이 정도 사안을 독자적으로 조사하고 확인하는 심층취재를 시도하지 않는가? 언제까지 수사기관의 발표와 정보게임에 끌려 다니는 보도 관행을 지속해야 하는가? 그러한 자세로 세계화 시대에 언론의 핵심의무인 정부에 대한 감시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