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겨울이 찾아왔다. 11월의 스산함이야 늘 그대로지만, 올 겨울은 왠지 새삼스럽다. 93년 11월, 긴장과 설레임속에 시작한 기자생활이 이제 만 9년이 넘어간다. 햇수로는 10년차라고 한다.
얼마 전 건강검진 일주일만에 결과서가 날아왔다. 과체중이니 살을 빼라는 의사의 우정어린 충고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30대 후반이라는 한창 나이에 느닷없이 세상을 등진 선배의 빈소에서 가슴으로 통곡하던 일까지 떠올리며 바보처럼 잠 못 이룬 일주일이었다.
건강에 이상이 없는 걸로 확인되면 담배도 끊고 술자리도 안가겠노라던 각오는 휴지조각이 돼버린 채 이상없음을 자축하는 술자리는 그 날도 밤 12시를 넘어서야 끝났다. 물론 다음날은 출근하는 내 뒤통수에 “자기 관리 좀 하면서 살라”는 볼 멘 소리가 날아든다. 취재라는 이름으로 휴일까지 밖으로 떠돌며 온갖 종류의 알콜 내음을 선사하는 기자 남편을 보며 걱정보다는 서운함이 우선할 것이다. 그렇게 이해하고 집을 나섰다. 그러나 ‘자기 관리’조차 못하는 사람이 기자로서 제대로 일할 수 있겠느냐는 문책의 성격도 다분한 듯 싶어 그 날은 많이 답답했다.
기자를 하다가 이제는 다른 일을 하는 한 선배는 “아침 저녁으로 취재원 집을 찾아다니고, 술자리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끼어야 한다며 아둥바둥 하지 마라. 결국 성공하는 쪽은 기자실을 지키며 풀받는 기자더라”며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는 후배 기자를 염려해주기도 했다. 가능한 시간을 많이 내 책도 보고 다른 분야에 대한 식견도 키우고 무엇보다 건강에 신경 쓰라는 고마운 걱정일 것이다.
또 다른 선배는 “그래도 기자가 최고다. 남들보다 한 걸음 더 뛰어서 특종도 하고 더 정확히 더 많은 것들을 알리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냐? 그러니 술자리, 식사자리 물먹지 말고 밤낮 가리지 말고 열심히 하라”며 등을 두드린다. 두 눈에서 불이 뿜어나는 기백으로 기사가 있는 곳이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달려가 옳지 않은 것은 않다고 얘기하는 기자 본연의 자세를 지키라는 격려의 말일 것이다.
기자라는 이름이 아직 어색한 초년시절이었다면 물론 지금도 정답을 택하라면 당연히 후자이겠지만 10년 가까이 기자로 살아오며 이제는 위 아래뿐 아니라 좌우까지 어느정도 살필 수 있게 돼서인지 솔직히 어느 한 쪽 편을 들기가 쉽지 않다. 지금 우리 사회부에는 9년전의 나를 닮은 후배들이 저녁마다 누렇게 뜬 얼굴로 모여든다. 그들에게 나는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기자로서 제대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자기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물론 말로야 두 가지 다 잘하라고 쉽게 얘기할 수 있겠지만 간단하지만은 않은 기자의 일상에 대해 지금 그들이 실감하기는 어려울 터. 10년을 채우지 못한 어리석은 기자는 천상 앞으로 10년쯤 더 우직하게 해본 뒤에나 제대로 된 답을 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부터는 자기관리도 잘해야겠다 싶지만 그것 역시 모를 일이다. 혹 자기관리가 잘 안되더라도 기자라서 그러려니 자위하며 살아갈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