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우리의 주장]취재·편집 기술자냐, 기자냐

일부 매체의 대선보도 '편파 기술'을 경계한다

우리의주장  2002.12.04 00:00:00

기사프린트

법정선거 운동에 돌입한 대통령선거 보도를 보면 이런 의문이 든다. 취재·편집 담당자들은 기술자인가, 기자인가.

기술자는 어떤 일을 정확하고 능률적으로 해내는 솜씨를 가진 사람을 말한다. 이렇게 좋은 뜻의 말도 한국현대사에선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고문기술자. 이런 이름을 가진 이들은 사건을 조작하고 왜곡하는 데 비상한 재주를 발휘했고, 자신의 재주를 출세의 발판으로 삼았다.

대선보도와 관련해 고문기술자를 언급하는 것은 우리 기자들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이 시기의 대선보도가 편파적으로 흐를 경우 언론사에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길 것인지는 지난 97년 대선을 통해 모두 알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도 편파 보도가 일부 매체에 의해 기술적으로 자행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 부산 등서 첫 거리유세가 시작된 이튿날, 한 신문의 1면은 한 후보가 내세운 이슈를 크게 부각시키고, 상대 후보가 궁지에 몰려 답변하는 식으로 큰 제목을 뽑았다. 다른 지면에선 상대 후보가 강조한 중요정책 사안은 무시한 채 지역감정을 자극한 듯한 발언만 크게 보도했다.

이런 예는 다른 신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시민단체의 대선보도 모니터 팀은 방송화면이나 신문 스틸사진의 편집에서도 이미지 조작이 나타나고 있다고 경계하고 있다.

일부 매체는 한 후보 진영의 폭로전을 여과 없이 보도할 뿐 더러 부추기는 듯한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폭로된 내용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언론 자체의 노력이 진행되지 않은 채 명확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일방의 주장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유권자 편가르기를 시도하면서도 ‘따옴표 보도'로 책임을 모면하려는 태도는 구태의연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면서도 한 후보 진영에 제기된 뇌물수수 의혹은 깔아뭉개는 이중적 보도태도를 보이고 있어 편집기술의 교묘함에도 불구하고 편향성이 두드러진다.

우리는 2002년 대선보도가 지난 97년에 비해 정책점검이 다소 늘어났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하고 있다. 그런데 법정 선거운동기간에 돌입하면서 일부 언론에서 이런 정책 점검마당을 통해 각 후보진영에게 ’안정’ ‘과격’ 이미지를 덧씌우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은 유감이다. 그런 것은 언론보도의 제목에서 나올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후보의 정책을 보고 판단할 문제다.

편파보도 기술의 기승은 일부 언론의 권력창출, 유착 욕심 때문임은 말할나위가 없다. 지난 97년에 실패한 것을 만회하려는 의욕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21세기 첫 대통령을 뽑는 한국 현대사를 왜곡하는 일이라는 것을 명심했으면 한다. 이제 우리 국민들도 어떤 세력의 압력이나 조작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의 판단으로 대통령을 뽑을 권리를 회복해야 한다. 일선 기자와 편집국 간부들은 밥벌이를 하고 있는 ‘회사 방침'에 몸을 숨긴 채 교묘한 기술을 행하는 일이 역사에 얼마나 죄를 짓는 일인지를 냉철하게 생각해야 한다. 편집보도 기술자가 고문 기술자보다 더 무서울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