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만화는 작가의 주장과 의견이 담겨 있는 일종의 칼럼이다. 시사만화의 주장과 의견이 나와 다르다고 흥분하는 것은 그래서 촌스럽다. ‘중립지대’에서의 관조가 아니라 논란과 쟁점의 현장에 뛰어들어 흥분하고 다투는 것. 그것이 시사만화의 본령이자 재미가 아닐까.
그런 점에서 본격적인 선거운동 진입을 앞두고 각 정파간의 치열한 전초전을 다룬 시사만화는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이 시기 주요한 정치흐름이었던 정치인의 낯뜨거운 이합집산과 노무현 정몽준 후보간의 단일화에 대한 ‘의도적 외면’ 내지 사시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노-정 후보가 단독회동, 단일화에 대한 원칙적 합의가 이루어졌던 지난달 18일자 조선일보 만평이다. 이날 조선만평은 지리산 반달곰을 소재로 다뤘다. 거의 대부분의 만평이 단일화를 소재로 다루고, 일반적으로 큰 이슈에 대해 정공법으로 맞서 왔던 평소의 조선만평에 견주어 본다면 엉뚱함, 그 자체이다. 작가의 심기가 그만큼 불편했던 것일까.
같은날 동아 4단만화 ‘나대로’는 선대위원장과 단일후보를 한자로 줄이면 ‘너’ ‘나’라는 노 정간의 동상이몽을 그려 “잘 안될 것이다”는 속내를 드러냈고, 중앙 역시 정몽준 저격수로 나선 이익치를 등장시켜 정 후보의 앞길이 순탄치 않을 수도 있다는 ‘암시’를 하고 있다. 소재 선택이나 표현 방식에 있어 차이는 있지만 단일화에 대한 ‘불편한 심기’만큼은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이후의 단일화 관련 만평도 이같은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 선봉장은 동아일보의 ‘나대로’다. 노무현 후보로의 단일화가 이루어진 뒤 ‘나대로’는 26일 정몽준 후보의 지지표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비몽사몽’이라고 표현했고, 27일에는 단일후보인 노 후보가 정 후보의 대북사업 비밀, 4000억 계좌 추적, 주가 조작 의혹 등에 대한 ‘뒤치다꺼리’에 고심하는 모습을 실었다. 백미는 단일화 직후인 19일 낚시대회에서 37cm 월척보다 작은 고기 두 마리를 합쳐 40cm가 된 것이 우승할 수 있느냐고 비아냥 한 것이다.
단일화를 비난하기 위해 난데없는 ‘물고기’라는 이미지를 차용한 것인데 설정이 매우 작위적이며, 복잡한 정치행위의 이미지를 ‘물고기 크기’로 단순화 해버린 일종의 이미지 왜곡이다.
단일화는 논쟁의 여지가 많은 사안이다.정책이 아닌 선거전략 차원에서의 접근이라는 부정적 측면과 ‘깨끗한 승복’의 보기 드문 정치문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의 긍정성도 함께 갖고 있다. 후보자 입장에서 보더라도 노-정간의 입장 차이가 있다면 이회창 후보의 당혹스러움도 있다. 나대로는 그 중 이회창 후보의 당혹스러움이나 단일화를 지지하는 국민 정서는 의도적으로 외면했다. 그런 점에서 편견을 가진 ‘외눈박이’식 태도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들 신문의 편향은 이회창 후보에 대한 비판적인 소재를 거의 다루지 않는데서 잘 드러난다. 이회창 후보의 ‘합동토론 기피증’이나, 정치개혁을 얘기하면서 선거법 개정이나 정치자금법은 빼고 통과시킨 것 등 다른 신문이 간간히 다룬 주제들에 대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외면하고 있다. 원래 합동토론 같은 것에 관심이 없었던 것 같지는 않다. 단일화 관련 노-정 후보간의 TV토론이 결정되자 조선은 기민하게 이를 소재로 그렸다. TV에서 토론을 하는 두 후보를 타후보들이 지켜보면서 “가만히 앉아서 8도 유세하네”라고 하는 내용으로 단일화 토론이 불공평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런 기민함이 이 후보의 합동토론 기피에는 적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민주당, 자민련을 탈당한 의원들의 줄이은 한나라당 행에 대한 ‘모르쇠’식 태도는 정도가 심했다는 지적이다. 철새 의원들의 행태는 전국의 모든 신문만평에 장기간 등장할 만큼시사만화에 적당한 소재였지만 왜 그런지 이들 신문에서는 철저하게 외면 당했다. 원칙도 소신도 없는 후진적 정치행태이지만 그 행위의 결과가 특정 정당에 불리하지 않다는 ‘계산’이 앞섰던 것은 아닌가.
조중동 만평과는 다르게 경향이나 한겨레, 대한매일 등은 ‘단일화=이회창 후보 타격’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과정에서 서민후보와 재벌후보의 ‘어울리지 않는 결합’ 내지 정책합의가 우선되지 않는 단일화의 원칙적 문제 지적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평소 재벌의 반기업성이나 정치개입에 대해 비판성향이었던 입장이 단일화라는 정치적 지점에 이르러서는 ‘봐주기’의 시각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편의주의 해석이요, 비판인 셈이다.
‘촌철살인’의 풍자가 핵심인 시사만화가 기사처럼 정치적 사안에 담겨 있는 여러 측면을 종합할 수는 없다. 또한 계량화할 수 있는 기계적인 중립을 요구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표현방식의 어려움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석하고 싶은 편향과 사시 때문이라면 독자들의 공감과 설득을 얻어내기는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