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 단일화 TV토론에 대해 정당 주최 토론회의 방송사 중계만 허용한 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해석으로 각 정당이 기획·주최한 홍보성 토론회가 검증 장치 없이 전파를 타면서 우려대로 국민 알권리와 방송편성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았다. 철저한 정책 검증은 이뤄지지 못했고 개인 신상에 초점을 맞춘 흥미 위주의 토론회로 ‘전파낭비’라는 비난이 제기됐다. 방송은 정당 행사의 중계소로 전락했고 국민은 잘 짜여진 홍보 방송의 구경꾼이 됐다.
특히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TV토론에 대한 반론권 차원에서 지난달 26일 열린 이회창 후보의 단독 정책토론회의 경우 △연애 시절 양다리를 걸친 적이 있나 △술 먹고 필름이 끊긴 적이 있나 △좋아하는 가수는 누구인가 등 신변잡기식 질문으로 눈총을 샀다. 이와 관련 대선미디어국민연대는 논평을 통해 “전체 질문 가운데 개인 신상 질문은 무려 38.1%나 됐고 정책은 33.3%, 정치적 이슈는 28.6%였다”며 “후보자 검증은 사라지고 이 후보의 개인 신상에만 초점이 맞춰져 전파 낭비 지적이 높다”고 지적했다.
미디어선거의 중요성이 확산되면서 TV토론의 공정성과 철저한 정책 검증의 역할도 더욱 커지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이 대통령선거방송토론위원회의 위상 강화를 요구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각 정당이 자신들의 후보 토론회를 얼마나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진행할 것인지는 처음부터 논란이 많았다. 한 방송사 보도국 간부는 “지난 97년에도 방송 3사가 한국논단 주최의 대선후보 사상검증토론회를 생중계했다가 토론 내용의 편파성으로 큰 물의를 빚은 일이 있다”며 “특정 단체의 토론회를 중계하는 것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데 정당이 주최하는 토론회를 공영방송사가 그대로 중계한 것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노무현-정몽준 후보의 단일화 토론은 국민 알권리 차원에서 필요했고, 이회창·권영길 후보의 단독 토론회는 반론권 차원에서 형평성 논란이 제기돼 선관위의 유권해석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는 방송사 관계자들의 이야기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선관위의 소신없는 정치적 유권해석과 이를 근거로 특정 당의 홍보성 토론회가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중계를 결정한 방송사 모두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다.
한 방송사 보도국 기자는 “정당 주최 토론회만 허용한 선관위 결정은방송사의 제작 자율성과 편성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선관위가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원칙만 결정하고 나머지는 방송사 자율에 맡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