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3일 신효순 심미선 두 여학생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사건이 발생한 이후 5개월여만에 부시 미국 대통령의 사과가 나왔고, 지난 3일 김대중 대통령은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선을 내각에 지시했다. 사건이 여기까지 ‘진전’되는 동안 언론은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고유경 간사는 “예전 사건에 비해 언론 보도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사안 자체의 파장도 컸지만 관계자들이나 시민단체들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로 언론이 보도할 만한 계기를 만들어 준 것도 한 요인이 됐다”고 평가했다. 사건 발생 다음날 첫 보도는 대부분 1단 기사로 시작됐다. 이후 국민일보 경향신문 대한매일 한겨레 한국일보 등은 현지 르포나 기획 등을 통해 진상접근 노력과 함께 SOFA 개정 문제를 이슈화시켰다. 특히 대한매일과 경향신문은 7~8월 ‘미 장갑차 사망 양주군 르포’ ‘장갑차 사건과 SOFA’ ‘미군범죄 현황과 SOFA개정 필요성’ 등의 기획을 집중 보도했다. 7~8월에 집중됐던 관련기사는 한동안 ‘잠복기’에 있다가 미군 무죄 판결 이후 다시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한 취재기자는 “미군 판결을 계기로 보도가 다시 본격화한 데는 관련단체들의 거듭된 문제제기와 시위 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반면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은 별다른 기획 없이 진행 상황을 대부분 스트레이트 기사로 처리하고 사설을 통해 입장을 표명하는 데 그쳤다. 이들 신문은 논조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지난 6월 이후 국민일보 경향신문 대한매일 문화일보 세계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등은 4~7건의 관련 사설을 통해 일제히 진상규명과 SOFA 개정을 요구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는 SOFA 개정에 대해 말을 아꼈다. 동아일보는 초기에 “이번 일이 한국 국민과 주한 미군간 갈등으로 비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 사고는 고의성이 없는 과실 범죄일 가능성이 크다”(6월 29일자)는 시각을 보였으며 부시 사과 전후 사설에서야 SOFA 개정 문제를 거론했다. 조선일보도 11월 들어 “미국이 ‘공무중 발생한 범죄’에 대한 재판관할권을 양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한·미 정부와 지도층, 국민들 모두가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때가 됐다”고 언급하는데 그쳤다. 통일부를 출입하는 한 기자는 “이번 사건에 관한 한 시민들이나인터넷매체 등에서 지속적으로 여론화시킨 것이지 거대언론들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평가하며 “주한미군이라는 또다른 성역을 허무는 과제를 여전히 시민단체에만 맡겨 둘 것인가”라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