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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선거전'의 종군기자

김동훈 기자  2002.12.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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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훈 한겨레 정치부 기자





‘드디어 시작이구나!’

대통령 선거의 막이 오른 지난달 27일 각 정당을 출입하는 기자들은 새삼스레 마음을 추스렸다. 출사표를 던진 뒤 국립묘지와 민주열사 묘지 등을 참배하며 의지를 다지는 후보들의 결연한 의지에야 비할 바 아니지만, 선거 ‘전(쟁)’에 뛰어든 기자들은 ‘종군기자’의 심정으로 아연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주기보다 긴, 5년마다 한번씩 찾아오는 대통령 선거의 산술적 무게감에 짓눌리고, (신문의 경우) 2~3명의 데스크와 10여명의 현장 기자가 날마다 6~7개 지면을 메워야 하는 정신적 스트레스에 지레 겁을 먹기 때문이다. 한밤중 두세 차례 판갈이는 필수이다 보니 업무량은 보통 때의 두 배를 웃돈다. 여기에 현장 기자에게는 초겨울 칼바람을 버버리 코트 깃으로 막고, 시린 손을 호호 불며 유세장을 취재해야 하는 육체적 고통이 하나 더 얹어진다.

선거 초반이지만, 한 후보의 지방유세에 사흘간 동행 취재하면서 겪은 일이다. 장소를 옮겨가며 하루 예닐곱 차례씩 이어지는 유세 시간에 맞추다 보니 기자단 버스는 고속도로를 총알처럼 날아다녔다. 급회전 길에서 몸이 쏠리고, 뒷자석에서는 머리가 천장에 닿을 정도로 차가 출렁대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마감 때는 또 한차례 전쟁을 치렀다. 야외 유세현장에 송고 시설이 마련돼 있다 보니 길거리에서 기사를 써야 했다. 청중들이 기자들 뒤에 빙 둘러서서 노트북을 지켜보는 바람에 곤혹스러울 때도 있었다. 야간 유세를 마친 한 유세장에선 노트북 불빛에 의존하며 시내판 기사를 보냈고, 비바람치는 천막 아래에서 기사를 작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짜증나는 일은 연단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다. 그 지방 사투리를 쓰거나 연고를 강조하는 말은 차라리 애교스럽다. 상대 지역에서 몰표를 주고 있으니 우리도 가만있을 수 없다는 발언은 유세 때마다 선수를 교체하며 써먹는 고정 레퍼토리다. ‘상습범’ ‘깽판’ 등의 용어를 써가며 상대 후보를 비방하고, “부인이 차려준 밥상을 뒤엎고, 젖은 발로 이불을 밟고 다녔다”며 상대방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그래도 ‘연고지’나 ‘텃밭’처럼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표현을 자제하고, 되도록 정책 위주로 보도하겠다고 다짐하는 많은 동료 기자들이 내겐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