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가 출자한 ㈜에머지에서 발행하는 ‘월간 에머지’가 이회창 후보 지지를 선언, 파문을 낳고 있다. 학술평론지 성격의 잡지이지만 언론사로서는 최초의 특정후보에 대한 공개지지 표명인데다 중앙일보가 99년 설립, 현재 50%의 지분을 갖고 있는 ‘특수관계’에 있어 중앙일보 경영진과의 ‘교감’ 여부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선거법상 ‘위법성’ 여부도 주목된다.
월간 에머지는 지난 11월 25일 발행된 12월호 ‘편집인의 글-우리가 지지하는 대통령 후보’에서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강위석 발행인 겸 편집인은 이 글에서 ‘에머지’의 창간 정신과 편집 방향이 ‘자유주의’라며 이 기준에 따라 지지 후보를 선택했다고 밝히고 있다. 선정 이유에 대해서는 “불행하게도 대선 후보 중 자유주의 원칙을 최고의 이념으로 내건 사람을 발견하는데는 실패하고 말았다.(…)그래서 우리는 자유주의 원칙과 가장 먼 주장을 가진 후보를 하나씩 제외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렇게 해서 남은 두 후보가 이회창 후보와 정몽준 후보였다. 이 두 후보 가운데서 하나를 제외하는 것은 그 주장의 불분명성을 기준으로 삼았다. 그 결과 우리는 미흡한 점은 많으나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기로 결정하였다”고 밝혔다. 대선 후보 중 정몽준 의원이 고려 대상에 포함된 된 것은 ‘에머지’ 12월호가 단일후보 확정 전에 발행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글을 쓴 강위석 편집인은 중앙일보 논설고문 출신으로 대표이사와 발행인을 겸임하고 있으며, 99년 에머지로 옮긴 뒤에도 올해 6월까지 중앙일보 필진으로 활동했다. 강 편집인은 이회창 후보 지지를 공개적으로 밝힌 데 대해 “글을 쓴 주목적은 특정 후보의 당락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이 아니라 고전적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에머지의 이념을 밝히는 데 있다”며 “글의 상당부분을 자유주의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데 할애한 것도 이같은 이유”라고 말했다.
중앙일보와의 ‘사전교감’ 여부와 관련, 중앙일보는 “알지도 못했다”며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본보 확인취재가 시작되자 “전혀 몰랐던 내용”이라며 강위석 편집인의 ‘돌출행동’에 대해 “다른 주주와 협의해 문책하겠다”고 밝혔다.
이제훈 사장은 “사전이든 사후든 전혀 협의가 없었다”며 “홍석현 회장이 대선에서 엄정 중립을 지킬 것을수 차례 강조했는데 이를 어긴 것은 묵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중앙일보의 방침으로 오해할 수도 있기 때문에 문책은 불가피하다”며 “문책 수위에 대해서는 다른 주주와 협의해 봐야 한다”고 밝혔다. 편집국 한 고위간부는 “편집국 차원에서 회사에 강력한 문책을 요구했다”며 “관련 매체가 중앙일보에 영향을 주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강위석 편집인은 “후보 지지 문제는 중앙일보 등 누구에게도 상의하지 않고 단독으로 결정했다”며 “대표이사 발행인으로서 책임을 지겠다. 문제가 생겨 주주가 나가라면 나가면 된다”고 말했다. 또 “선거법 위반 여부에 대해서는 주위에 자문을 구했는데 의견이 반반으로 갈렸다”며 “특정 후보를 비방하는 내용이 아니고 잡지 이념을 밝히는 문제인 만큼 법에 걸리더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지도과 관계자는 “현행 선거법 8조와 60조에 따르면 편집인은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며 “에머지의 입장 표명이 선거운동이라면 조치를 취하되 선거운동 여부에 대해서는 검토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에머지는 지난 99년 중앙일보사의 자회사로 출범했다. 2001년도 결산보고서에 따르면 중앙일보는 에머지를 발행하는 중앙일보새천년(주)의 지분 91%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초 전경련이 주주로 들어오면서 (주)에머지로 바뀌었고 중앙일보와 전경련이 각각 50%씩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