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우리 언론의 고질적인 구태 중 하나가 민심기행이니 지역별 판세분석이니 하는 보도를 통해 지역주의를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대선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요즘, 이러한 구태는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다. 지역별 판세를 지나치게 부각시키는 보도는 선거판을 정책과 인물의 대결이 아니라 지역별 ‘게임’으로 전락시키고 부동층에게 선택기준으로 ‘지역’을 강조하는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한다. 특히 사설이나 칼럼을 통해서는 지역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하면서, 정작 기사에서는 결과적으로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이율배반적인 보도가 계속되고 있다. 기자협회 대선공정보도위원회에서는 특히 가장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신문들의 선거보도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점이 지적됐다.
12월 6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1면 머릿기사가 좋은 예다. 조선의 경우 ‘한나라-부산 경남서 다시 큰 격차’ ‘민주당-수도권지역 상승세 가속’, 동아는 ‘부산경남 충청을 잡아라’라는 자극적 제목을 달고 각 당의 자체분석을 인용해 이번 대선의 최대변수가 바로 지역별 표심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두 신문은 기획보도에서도 한 두 면을 털어 ‘각 지역별 판세’, ‘최대승부처는 충청’ 등의 자극적인 기사를 거의 매일 내보내고 있다. 조선은 그러면서도 9일 기명칼럼에서 ‘지역·세대 아닌 이념·정책으로’ 후보를 선택하자고 주장해 대표적인 이중적 보도행태로 지적됐다.
반면 중앙일보의 경우 12월 9일 ‘떠도는 충청민심’ 등의 르포기사를 싣긴 했지만 지역판세 보도를 1면으로 올리지는 않아 상대적 신중함을 보인 것으로 평가됐다. 한겨레 역시 9일 3면에 ‘권역별 판세 중간점검’이 등장했으나 대체적으로 지역주의를 자극할 우려가 있는 보도는 눈에 띄지 않았다. 특히 경향신문은 지난 한 주 지역판세 보도를 자제하고 7일 각 당의 미디어 전략으로 포지티브 선거전의 희망이 싹트고 있다고 전망했다. 또 9, 10일 이틀에 걸쳐 세대별 표심을 자세히 분석하는 집중보도를 내보내고 1면 머릿기사 역시 ‘이·노 지지율 높이기 총력전’ 등으로 덜 자극적인 제목을 사용함으로써 보다 바람직한 선거보도를 시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와 함께 97년 대선에서 일부 신문이 보여줬던 노골적인 편파보도행태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재연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는 색깔론에 근거해 특정후보에 대해 직접적인 공격을 하기보다는 좀더 우회적이고 교묘한 방식의 편파보도를 시도하는 경우가 눈에 띈다. 동아일보가 5일과 6일 각각 한 면의 절반이상을 할애해 기획기사로 실은 ‘정신분석학자가 본 대통령후보’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이 기사는 이회창 노무현 두 후보가 각각 파더 콤플렉스와 머더 콤플렉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하고 이같은 성향이 집권 뒤 어떠한 정책실현으로 나타날 것인가 예측하는 다소 비과학적인 주장을 담고 있다. 그러나 동아는 이회창 후보의 경우 ‘청빈 강조한 엄친 영향…순수에 집착, 집권땐 부정부패 일소 나설 듯’이라는 제목을 달아 긍정적인 면을 최대한 부각시킨 반면, 노무현 후보는 ‘머더 콤플렉스 사회 다른 곳으로 분출, 개인행복보다 사회변혁 추구’라는 제목으로 독자들에게 은연중 ‘불안감’을 강조했다. 내용 역시 이 후보는 ‘아버지보다 훨씬 순수하고 완전한 인격을 갖춘 초월적 존재에 자신의 욕구를 투사하고 자아 이상을 맞춘 것이 아닌가’하는 느낌이 든다며 강직하고 깨끗한 성격을 강조했지만, 노 후보는 ‘범죄자에서 개과천선한 장발장과 닮은 인생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대학을 나오지 않은 탓에 끈끈하게 얽힌 친구도 별로 없는 것 같다’고 깎아내림으로써 지난 한 주간 대선보도 중 최악의 편파보도로 지적됐다.
이에 비해 KBS, MBC, SBS 등 방송3사 메인뉴스의 대선보도에 대한 평가는 한마디로 ‘각 후보간 형식적 균형에만 신경쓴 전형적인 유세전 중계보도’라는 말로 규정할 수 있다. 이회창, 노무현 후보의 유세과정과 연설내용을 시시콜콜이 소개하고 기자들의 정리멘트조차 ‘000 후보는 내일 XXX 지역을 찾아가 민심잡기에 나선다’등의 일정소개로 끝맺는 천편일률적인 보도가 주종을 이루고 있어 방송사간 보도내용의 차이를 거의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양 후보진영의 폭로전 역시 사실검증 여부는 아예 언급도 안되고 양쪽의 주장만 같은 길이, 같은 톤으로 나열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기계적 형평성은 후보들의 개인 이미지 형성에 큰 영향을 주는 방송뉴스의 속성상 자칫 제기될 수 있는 편파시비를 예방하는데 최우선점을 두고 있는데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유세전을 제외한 일반기획기사에서까지 대부분 ‘연예인 지원경쟁’이나 ‘방송광고 대결’ 등 이른바 볼거리·흥미 위주의 보도에 그치고만 있는 점은 역시 고질적인 한계로 지적됐다. 방송뉴스의 생생한 현장감을 살리면서도 유권자의 합리적인 선택을 유도할 수 있는 ‘고민의 흔적’이 담긴 보도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