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점과 관광버스업계가 울상이라고 한다. 선거철이면 유권자들을 먹이고 실어 나르는 후보들 덕택에 어김없이 선거특수를 누려 왔는데 이번 대선만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다. 선거란 으레 혼탁한 것이라는 우리의 고정관념도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이 한 가지 명제만 변하지 않는다는 역설도 있다. 시계의 시침이 우리 눈에는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움직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보다 질적인 변화, 보다 근본적인 변화상을 드러내고 있다.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노무현 바람’과 ‘반미정서’가 바로 그러한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3월 민주당 국민경선이 시작됐을 때만 해도 그토록 거대한 바람이 불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특히 조중동 등 이른바 거대보수언론의 일관되고 집요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풍은 불었고 노무현은 파죽지세로 후보직을 거머쥐었다.
지난 달의 후보단일화도 마찬가지다. 조중동의 결사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 이전에 후보단일화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이들의 ‘예측’에도 불구하고 후보단일화는 성사됐고 제2의 노풍이 불었다. 물론 여기에는 기막힌 우연과 정치적 운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신문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다는 조중동의 말발이 먹혀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반미정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6월 신효순·심미선 두 여중생이 미군 궤도차량에 깔려 숨졌을 때 오늘과 같은 거대한 반미의 물결을 예상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됐을까. 지난 달 미군병사들에 대한 무죄평결이 내려졌을 때까지도 반미정서가 대선 최대의 이슈가 되는, 오늘의 사태를 예견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지난 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질 때가 생각난다. 당시 국제부에서 일했던 필자는 베를린장벽은 무너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세계 유수의 언론과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국제정치의 여러 현실들을 근거로 한결같이 독일통일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동·서독 국민들의 거대한 통일 염원 앞에 베를린장벽은 허무하게 무너져 버렸다.
그때의 교훈. ‘이른바 전문가들의 예측을 100% 믿지 말자’는것이었다. 기존 현실과, 그 밑의 전제들을 바탕으로 한 전문가들의 예측이란 그 시대의 연장이나 확대만을 알아맞출 뿐, 시대의 근본적 변화를 감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정치문화에도 베를린장벽의 붕괴에 비견될 만한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유권자들은 더 이상 3김과 같은 거물 정치인이나 조중동과 같은 거대언론들이 찍어주는 대로 정치적 선택을 하지 않는다. 특히 20∼30대의 젊은 유권자들은 ‘미국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식의, 40대 이상이 갖고 있는 금기의식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들의 반미는 논리 이전의 것이다. 그들의 몸이, 본능이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 거기다 대고 ‘혈맹’을 들먹이고, ‘한미동맹의 중차대함’을 설교해 봐야 ‘쇠귀에 경 읽기’일 뿐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라는 말이 있다. 현실의 올바른 모습을 알아보고 나름대로의 이론체계를 세울 수 있는 것은 거대한 현실변화의 소용돌이가 잦아든 다음, 즉 저녁 무렵 어스름에야 가능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우리는 지금 냉전 이후 그토록 들먹여왔던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겪고 있다. 이같은 변화의 대세를 인정하지 않고 이를 거스르려 한다면 아마도 그는, 또는 그 세력은 당랑거철(螳螂拒轍)의 운명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