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 내내 “저널리즘의 핵심 요소들”(The Elements of Journalism)이라는 책을 학생들과 함께 열심히 읽었다.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들이 자기 나라 언론의 문제를 지적하고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를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의 첫 장을 보면 저널리즘은 시민을 자유롭게 해줘야 하고 또 시민들이 민주적으로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써있다. 언론이 민주사회에 존재하는 핵심 이유가 이것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존재 이유를 실천하려면 언론은 진실만을 추구해야 하고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닌 독자와 시청자들 즉 시민들에게만 충성을 바쳐야 한다는게 이 책의 주장이다.
온 나라를 흔들고 있는 선거의 열풍 속에서 이러한 저널리즘의 기초를 생각하는 이유는 이번 대선을 다루는 신문 방송사와 기자들의 보도 방식에 크게 실망했기 때문이다. 논점을 단순화 시켜 두 가지 문제만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번 대선 보도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시민의 무시요 독자와 시청자에 대한 철저한 외면이다. 이는 아마도 선거 보도 경험이 아직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겠고, 과거부터 내려온 선거보도 관행의 힘이겠지만, 신문이나 방송을 가릴 것 없이 모든 매체의 선거보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치인 중심이었다. 후보들의 움직임과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합집산이 기자들이 주목하는 정치현상의 전부였다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이러한 보도를 통해 언론이 추적하는 핵심질문은 결국 누가 당선되느냐로 모아진다. 이미 수도 없이 지적돼온 경마 저널리즘의 문제를 얘기하려는게 아니다. 정책중심 보도를 하라는 것도 아니다. 선거보도에서 시민과 독자를 강조하는 이유는 선거의 주체가 그들이고 객체가 후보자들이어야 제대로 되는 민주주의가 실천된다는 점을 지적하려 할 뿐이다.
현대 사회의 선거는 어쩔 수 없이 미디어 선거다. 현실은 언론에 의해, 기자들의 글과 말에 의해 규정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막대한 힘을 가진 언론이 5년이 지나야 한번 씩 찾아오는 소중한 대선의 체험 기회를 몇몇 정치인들만의 게임으로 고정시켜서야 되겠는가. 이미 늦었지만 다음 선거에서라도 나는 시민이 리드의 주어가 되는 선거기사를 보고 싶다. 가능한 다양한 시민, 독자들의 소리가 지면과 화면에 등장해 정치인들에게 따지고 요구하는 장면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그래야 누가 주인이고 누가 종인지가 제자리를 잡는 것 아닌가.
대선 보도의 두 번째 문제는 언론사와 기자들이 스스로의 역할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점이다. 정당과 이념과 사주와 광고주, 그리고 독자들에 대한 고려까지 한꺼번에 뭉뚱그려져 심각한 인식의 혼란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스트레이트 기사에 느낌과 의견이 덧칠되고 해설인지 칼럼인지 모르는 기사들도 수없이 보도됐다. 언론사별 편향성은 한편으로 사회구성원 모두가 인정하는 편집정책으로 자리를 잡는 역설이 자연스런 언론질서가 되기도 했다. 이는 한국 언론의 미래를 위해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우리 사회에서 오염되지 않은 진실은 사라졌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기자는 어느 언론사에 근무하건 양심에 따라 스스로가 관찰하고 경험한 사실을 그대로 기록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윤리가 이번 선거를 겪으며 완전히 폐기처분되지 않았기를 희망한다. 신문의 정치적 편향성은 사설과 칼럼으로 표현하면 된다. 방송보도의 정치성도 논평을 통해서 전달하면 된다. 독자에게 진실을 전하려 노력하는 스트레이트 기사의 글 쓰기와 제목 달기는 철저하게 탈정치적이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기준이 무너지면 저널리즘은 프로파간다가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