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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론·흑색선전 '안간힘'…국민은 외면

대선공정보도위원회 선거보도 방담

박주선 기자  2002.12.1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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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석 자

사회 김영호 전 세계일보 편집국장

김진호 경향신문 국제부

김호일 부산일보 문화부

박성제 MBC 노조 민실위 간사

백무현 대한매일 화백

이희용 연합뉴스 여론매체부

장재선 문화일보 노조위원장

주동황 광운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정구철 기자협회보 편집국장





16대 대선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번 대선은 정책검증 보도가 많아졌고, 인터넷언론의 영향력이 확대됐다는 점 등에서 과거와 다른 새로운 양상을 보였다. 반면 특정 후보 편들기, 폭로 중계보도 등은 여전히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기자협회 대선공정보도위원회는 지난 13일 16대 대선 보도를 쟁점별로 되돌아보면서 성과와 한계를 짚어봤다.









특정후보 편들기 보도 여전

-불법 도청, 행정수도 이전 문제 등을 언론에서 선거 쟁점으로 다루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의제화 하는 것 자체보다 어떻게 다루느냐에 있다. 특정 후보 편들기 등 주제를 다루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

-일부 언론에서 특정 후보 편들기 인상이 짙다. 그러나 잘 들여다보면 보혁 대결로 몰고 가려다 결과적으로 실패했고 도청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행정수도 문제는 후보간 공방으로 다루고 있으나 지역간 불균형 발전 문제 등 건설적 논의로 이끌지 못하고 있다.

-수도 이전 문제를 ‘집값 떨어진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즉자적이고 종합적이지 못하다.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집값 문제로 몰고가는 게 과연 건설적인가. 집값은 떨어지면 안되는 것인가. 부동산 정책에 대한 문제제기를 할 때는 언론이 집값 폭등이나 주거비용이 과도한 데 대한 지적을 했었다.

-수도 이전 문제의 본질은 수도권 집중 완화다. 그러나 언론은 집값을 쟁점으로 부각시킨다. 설사 집값이 중요한 문제라고 하더라도 현재 과도하게 올라있는 집값이 떨어지는 것은 오히려 안정세로 가는 것 아닌가.

-행정수도를 옮기는 게 타당성과 현실성이 있는지, 공약으로 실현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

-후보측 주장에 대해 언론이 중계하고 공방으로 몰고 가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자체적으로 기획취재할 수 있는 사안은 언론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특히 도청문제는 언론이 추적 취재할 수 있었다. 공방으로 대비시킬 사안이 있고 진실이 무엇인지 가려 할 경우가 있는데 늘 공방으로만 끝내버린다.



북풍 보도 일관성 가져야

-분단상황에서 핵문제 등 북한문제가 주요하게 제기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냉철한 분석이 빠져있다는 것이다. 핵문제가 한반도 정세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고, 이 문제가 나온 배경은 어떤 것인지 등에 대한 분석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불안감을 조성하고 인상 비평에 그친 측면이 있다.

-북의 미사일 수출은 과거에도 해온 일이고 나포된 화물선은 하루만에 풀려났다. 사실상 일회성으로 끝난 것인데 언론 보도가 크게 부풀려져 국민들에게 필요 이상의 불안감을 줬다. 핵시설 재가동 문제 역시 북의 외교적 협상을 위한 지렛대 활용 의도 등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이 필요했다고 본다.

-미사일 문제나 핵시설 재가동은 국민 정서에 비춰볼 때 중요한 문제다. 문제의식을 갖고 접근하는 것은 맞다. 중요한 건 일관성 문제다. 중요한 문제라면 평소에도 중요하게 취급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간 북한 미사일 수출 문제 등에 대한 심층보도나 추적취재가 별로 없었다. 미국이 나포하자 전혀 몰랐던 새로운 사실이 터진 것처럼 보도하는 것은 문제다. 핵시설 재가동 문제 역시 독자들에게 위기감을 주는 만큼 같은 비중의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



결정적 변수서 상대적 변수로

-겉으로는 후보간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교묘하게 편파가 이루어지고 있다. 제목에서의 의제 설정, 기사 배열, 사진 선택 등에서 기술적으로 특정 후보에게 유리한 보도를 한다.

-도청 문제가 나왔을 때 대부분의 언론은 따옴표로 인용해 크게 보도했다. 일방적 폭로를 크게 옮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실 추적에 나섰어야 했다. 폭로한 정당에 대해서도 근거와 출처를 정확하게 밝힐 것을 요구해야 했지만 그런 노력이 별로 없었다. 후보별 의제 설정에 있어서도 특정 정당에 유리한 쟁점을 부각시키는 것이 많았다. 기계적으로는 균형을 이뤘지만 내용면에서는 편파가 두드러졌다. 차라리 언론이 특정 후보 지지 선언을 하는 것이 더 낫다는 의견이 나올 정도다.

-언론이 잔머리를 쓰는 것도 이번 선거가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인터넷 언론이 발달하면서 색깔 공세나 폭로가 잘 먹히지 않고, 따옴표나 기술 편파의 효과가 현저히 떨어졌다. 언론이 의도하는 대로 여론이 움직이지 않는다. 이번 선거에서는 기존 언론의 영향력이 많이 약화된 것을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언론이 주요하고 결정적 변수였다면 이제는 상대적 변수로 바뀌어가고 있다. 굵직한테마로 이념, 색깔 공세를 펴면 여론이 따라갔는데 이제는 언론도 많은 변수 중 하나로 작용하는 정도다. 데스크도 이를 인식하는 것 같다. 밀어부치기식 편파에서 기술적 편파로 바뀐 것도 그런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방송, 기계적 균형 치중

-방송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신문은 원하는 독자만 보지만 방송은 무차별적으로 나가기 때문에 조금만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전화가 온다. 그러다 보니 쟁점, 이슈에 대한 공격적 분석보다 공방으로 적당히 균형을 맞추는 경우가 많아진다. 유세장 스케치나 후보들의 주요발언, 다음날 유세 일정 소개 등 흥미나 볼거리 기사가 많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기획도 연예인 동원, 선거운동원의 하루 등 연성기사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압사 사건과 관련, 방송이 뉴스와 시사프로그램 등에서 아젠다를 만들어 합리적인 한미관계 촉구에 큰 역할을 했던 것은 평가할 만하다.

-방송이 유세 등 스케치 위주의 보도를 주요하게 다루다보니 후보들도 카메라를 의식해 연출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유세장에 군중을 동원해 세를 과시하는가 하면 재래시장에서 음식 먹는 장면을 연출해 서민과 친근함을 강조한다. 좋은 그림을 만들기 위해 방송사가 역으로 후보들에게 연출을 유도하는 경우도 있다. 이미지 조작에 방송이 이용되는 것이다.

-방송이 민감한 사안은 공방으로 처리하고 다루기 편안한 소재만을 찾는 것도 문제다. 그러다 보면 각 후보별 일정, 입장 등을 나란히 소개하는 데 머물게 된다. 또 1분 30초 뉴스를 만들다보면 극히 일부가 전체로 소개되는 문제도 낳는다. 예컨대 한 후보가 하루 수십 가지 일정 중 하나로 사찰 방문을 했다면 방송은 후보 관련 주요 소식에서 ‘불심잡기’로 초점을 맞춘다.

-방송에서 ‘좋은 그림’을 자꾸 찾다보니까 사실에서 멀어지게 된다. 공급자 입장에서 기계적 균형을 맞추려는 것이 이해는 가지만 시청자 입장에서는 후보측에서 연출하는 좋은 그림보다는 진실이 더 중요하다. 기술적 균형에 매몰되지 않고 그림 만들기에 집착하는 관행이 깨졌으면 한다.

-방송이 지나치게 기계적 균형에 치중하는 것은 오히려 책임 방기일 수 있다. 후보들의 주장을 차례로 보여주면서 공방으로 보도를 하면 양적 균형을 맞추었더라도 정작 시청자들은 쟁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없다. 후보들에게같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보다는 기사의 방향을 정해 정확한 판단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후보 위주의 보도에서 유권자 위주의 보도로 전환하는 것도 기계적 균형에서 탈피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겠다.

-합동토론 직후 방송 뉴스에서 “우리가 제일 잘했다”는 각당 반응을 보여주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각 후보측 반응이라는 게 뻔하지 않은가. 방송뉴스의 한계는 인정하지만 고민의 흔적이 담긴 뉴스를 만들어야 한다. 종이매체가 할 수 없는 방송의 특성을 살리는 뉴스 개발이 필요하다. 방송은 글로 전달하는 것과 달리 육성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예컨대 후보들의 지역감정 자극 발언이나 말바꾸기를 모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유권자들의 주요한 판단 근거가 될 것이다.



정책 검증보도 늘어

-전반적으로 정책 점검이 많이 늘어났다. 가독성에 연연하지 않고 나름대로 애를 쓴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정당에서 표를 의식해 터트리는 폭로를 그대로 중계 방송하거나 오히려 증폭시키는 것은 여전히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정당의 폭로가 중단되면 언론보도도 사라진다. 각당이 네거티브 전략으로 나간 데는 언론의 책임도 있다. 언론이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정치부 기자들이 대선보도를 전담하다보니 사회, 경제, 문화 정책 등에 대해 폭넓게 이해를 못하는 한계가 있다. 각 부서별 전문기자가 해당 분야에 대한 정책을 검증하고 쟁점화시켜 후보간 정책 대결을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서간 취재 공조, 유권자 중심의 보도, 정책 공약보도의 가독성 제고 등 취재시스템이나 관행의 개선이 필요하다.



인터넷매체 여론형성 일조

-선거운동 기간 내 여론조사 공표를 금지하니까 후보간 지지율 보도는 못하는 대신 지역별 판세 분석이 대단히 많았다. ‘충청도 무주공산’ 등 출처 미상의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 지역별 분석은 독자들에게 혼란을 준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가 없었으면 보다 정확한 지지율을 보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언론이 선거 막판에 의도적으로 여론 조사를 조작해 보도하면 엄청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악의적인 여론조사 보도를 막기 위해 여론조사 공표 금지는 필요하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을 부재자 투표 직전까지로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선거운동 기간 내 여론조사 공표를허용하더라도 언론사가 과거처럼 악의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해 보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외부의 감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발생할 부작용에 대해서는 표본, 설문 항목 공개 의무화 등 감시 장치를 제도화하면 막을 수 있다고 본다.

-지역별 판세 분석은 유권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판세분석이라 하더라도 연령별, 쟁점별 분석은 유권자들에게 유익한 정보일 수 있다. 자신의 판단을 연령별, 쟁점별로 비교해 볼 수 있다. 반면 지역별 판세분석은 득보다는 지역감정을 조장한다는 부작용이 더 크다.

-1000명 단위 여론조사에서 전국이 아닌 지역별로 판세 분석을 하는 것은 표본수 부족 때문에 대표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실례로 올초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한화갑 후보는 여론조사 결과 제주지역 지지율이 0%였지만 실제 1위를 했었다. 이 때문에 여론조사 전문기관도 1000명 단위 조사에서 지역별 분석은 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선거가 후반에 이르니까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보도가 노골화하고 있다. 한 지방신문 기사를 보면 제목에서 ‘지역감정을 부추기지 말자’고 하면서 후보들의 발언을 그대로 옮겨 지역감정을 자극하고 있다.



여론시장 독점 깨뜨리기 기여

-인터넷언론이 여론을 형성하는 주요 축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일부 언론이 주도하던 여론시장의 독점을 깨뜨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사회의식 구조에 거대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특히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는 사무직 종사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네거티브 선거 전략이 안 먹히게 하는 데도 일조했다. 인터넷언론이 후보들의 정책검증을 하지는 않지만 언론보도를 무조건 수용하지 않고 따져보게 했다. 기성 언론에 대한 반론이 없었던 상황에서 크게 진전한 것이다. 언론에도 자극제가 될 수 있다.

정리=박주선 기자 sun@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