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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경영위·위성·교육 등 쟁점별 분산 조짐

방송법 전열 균열 우려

이경숙  2000.11.07 11: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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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방송법 관련 쟁점이 다시 분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개혁적 방송입법 운동세력의 전열이 흩어지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도 높아가고 있다.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은 정부가 방송정책행정권을 가져야 한다는 입장을 공식 표명했다. 한국언론학회(회장 방정배) 내에서는 위성방송법 우선 통과론이 제기됐다. 언론개혁시민연대(상임대표 김중배) 주최 토론회에선 KBS 경영위원회 도입을 두고 찬반양론이 벌어졌다. EBS 노조가 통합방송법 조속 제정을 요구하며 파업을 결의했지만 KBS, MBC 노조는 간부가 구속되어 있는 와중이라 재파업의 동력을 높이기 어려운 형편이다. 방송정책 전문가들은 가을 정기국회에서 통합방송법이 처리되지 않으면 정부가 위성방송법, 교육방송법 등 시급한 몇 개 부문만 분리 입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언개연은 24일 방송개혁 입법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발표하고 시민사회의 단결과 적극적인 실천의지를 재다짐했다. 현재 제기되고 있는 방송법 관련 쟁점과 해법은 무엇일까.





위성방송법 우선 입법은 하석상대



위성방송 우선 처리론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는 것은 급박하게 변하는 나라 안팎의 방송환경 때문이다. 북한의 위성방송 실시는 국가보안법의 삼엄한 수비를 뚫어 정부가 국내 지상파방송국을 통한 간접시청을 허용케 만들었다. 9월부터는 한국필립위성이 해외에서 송출하는 방식으로 동양위성방송(OSB)에 이어 무방비상태의 한국 위성방송 시장에 뛰어든다. 무궁화 3호 위성도 9월 중순께 발사될 예정이다. 그러나 방송법 통과를 기다리며 위성방송사업을 준비하던 기업들은 IMF 구제금융기를 거치며 32개에서 한국통신, 데이콤 등 2개로 줄어들었다.



언론학회가 27일 개최한 '한국 위성방송 운용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일부 학자들이 위성방송법 우선 처리론을 제기하고 나선 것도 이같은 배경이다. 방정배 성균관대 교수(언론학)는 "위성은 이미 떠있고 이용만 남았다"며 한시적인 위성방송법이라도 지지부진하게 늦어지는 통합방송법보다 먼저 처리할 것을 제안했다. 박천일 숙명여대 교수(언론정보학)도 "새 매체의 출현에는 매체의 특성에 걸맞는 탄력적인 법제 운용이 필수"라며 이에 동의했다.



그러나 반론은 거셌다. 김승수 전북대 교수(언론학)는 "10여년 전 끝났어야 할 통합방송법 제정문제가 처리되지 못한 것은 지금까지도 방송에 대한사회적합의가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기본법(통합방송법)이 세워지지 않았는데 하위법(위성방송법)만 따로 처리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기본부터 세워야



언개연이 24일 개최한 '통합방송법 좌절과 방송개혁운동의 방향' 토론회에서 학자와 방송노조, 시민단체들은 ▷통합방송법 조속 처리 ▷방송정책권의 통합방송위 이관이란 원칙을 다시 한번 천명했다. 언개연은 "방송정책행정권의 정부 존속은 그간의 사회적 합의를 전복하고 개혁에 역행하는 처사"라며 "방송법을 유보하고 위성방송법을 만든다는 일도 어불성설"이라고 일축했다.



대통령 직속 방송개혁위원회에서 정부여당 방송법의 초안을 잡았던 언론학자들도 정치권과 일부 방송경영진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섰다. 김학천 건국대 교수(언론학)는 "방송행정 책임자가 방송행정권을 다시 쥐겠다고 공언하고, 국가 기간방송의 책임자는 사장의 공공적 임명절차를 수용하지 않은 채 독자적인 경영위원회를 주장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김 교수는 "방송개혁 작업 실세를 계속 바꿔 가며 정치논리만 따라간 권력에 대해서는 집요한 추궁을 해야 한다"며 "방송개혁위원회와 노조가 해낸 작업의 근본이 흔들리는 징후가 보일 때는 시민단체가 총선에서 책임을 묻자"고 주장했다.





KBS 독립 현실적 대안 찾아야



강대인 계명대 교수(언론학)는 "KBS 경영위원회 설치 주장이 국회에서 방송법 통과가 무산된 주 쟁점으로 밝혀지면서 과연 그만한 가치와 무게를 지닌 것인지는 의문이 일고 있다"며 "공영방송에 경영위원회를 설치하면 오히려 정부로부터 직접 감독을 받는 형태로 변질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KBS가 예로 드는 NHK나 BBC 경영위도 정부부처로부터 각종 사전승인 등 경영 전반에 광범위한 감독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의 경우 MBC나 EBS도 공영방송의 범주에 들어가므로 형평에 맞춰 방송사별 별도 규제기구를 설립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방정배 성균관대 교수(언론학)은 "외국의 공민영 공존체제에는 공영방송 별도의 규제기구가 있다"며 방송개혁위원회에서 완전하게 논란을 정리하지 못한 데 유감을 표명했다. 김인규 KBS 정책국장은 "통합방송법 대로면 KBS는 방송위원회의 직할기구가 된다"며 방송위의 KBS 인사권과 경영감독권을 분리하자고 주장했다.



KBS의 한기자는"문제제기의 핵심은 경영위원회 도입이 아니라 공영방송의 독립적이고 합리적인 경영체제 마련"이라며 "다음 국회에서 다시 불필요한 논란을 반복하지 않도록 이해당사자들이 합의할 만한 대안을 미리 준비해 놓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재파업의 위력 미지수



EBS 노조(위원장 정연도)는 28일 통합방송법과 교육방송 공사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 11월 1일부터 전면적인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방송노조들도 지난 13일 노조 지도부 구속과 통합방송법 제정 무산에 대항하기 위해 재파업 돌입을 선언한 상태다.



그러나 사법부의 태도는 여전히 강경하고 구속된 방송노조 지도부들에 대한 구속적부심은 잇따라 기각돼 상황은 좋지 않다. 노조 내부에서조차 재파업 전망을 어둡게 내다보고 있다. 한 노조 간부는 "이제 국민적 합의가 관건"이라며 "기자들의 적극적인 여론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기자협회가 실시 중인 '방송법 조속 통과를 위한 전국기자 서명운동"에는 현재까지 500여명이 참여했으며 이 주중 서명운동이 마무리되는 대로 청와대 등 정치권에 전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