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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미선아, 효순아 미안하다"

고제규 기자  2002.12.18 15: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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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제규 시사저널 기획특집부 기자





주간지 기자는 마감을 두 번 한다. 토요일과 그 다음주 월요일. 일주일치 먹이감을 쫓다보면 수요일이나 목요일쯤 고민을 한다. ‘지금 쫓는 먹이감이 일주일치 양식이 될까?’ ‘저게 더 싱싱한데’. 때로는 금요일까지 고민이 계속된다.

그때도 그랬다. 6월 13일은 목요일이었다. 월드컵 관련 기사를 준비하는데, 시민단체 간부가 전화를 했다. “의정부에서 두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졌다.” 고민 끝에 두고두고 후회하는 결정을 하고 말았다. 여중생 사건을 접고, 월드컵 축제에 편승한 것이다.

아는 것이 병이었다. 사내에서 미군범죄전문기자로 불릴 만큼 미군 범죄를 자주 취재했다. 얄팍한 경험으로 효순이와 미선이는 잊혀지는 것이 정상이었다. 조중필, 서정만, 전동록씨 등 수많은 미군범죄 피해자들이 그랬듯이.

얄팍한 지식으로도 그랬다. 미군은 재판권을 이양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미군은 공무중인 사건에 대한 재판권 이양을 단 한번도 호의(好意)적으로 고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깊이 의심하는 호의(狐擬)적 태도로 이양을 거부해 왔다. 무죄판결을 받은 병사는 본국으로 돌아가고, 유야 무야 돼야 했다. 미군과 한국정부는 이런 관례를 그대로 밟아왔다. 관례가 잘못된 줄은 알았지만, 수 십년을 그랬으니 이번에도 다를 게 없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잘못된 관례는 보기 좋게 깨졌다. 촛불시위는 두 여중생을 살린 불씨였고, 착각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나 자신을 일깨워준 울림이었다. 촛불 시위 취재는 반성의 시간이었다. 참가한 시민 가운데 일부는 언론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12월 7일 이문동 아줌마라는 30대 주부는 “언론이 이번 사건을 똑바로 보도했어도 오만한 미국의 태도는 막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줌마의 호소는 송곳처럼 가슴에 박혔다. 수만의 시위대가 나를 비웃는 듯 했다. 기자라는 말이 그때처럼 부끄러운 적이 없었다.

뒤늦게 주둔군지위협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사건의 파장을 보도했다. 하지만 6월 13일 그 날만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붉혀진다.

12월 14일부터 기자가 아닌 시민의 한사람으로 촛불시위에 참여했다. 그래야 두 여중생에게 빚진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여중생 사건은 3년차 기자인 내게 잊지 못할 사건이다. 현실의 모순에 문제의식 없이 둔감해져 버린 새내기 기자를일깨워 주었다. 다시 한번 그 날 현장에 달려가지 못한 내 자신을 반성한다. ‘미선아, 효순아 미안하다.’ 두 여중생에게 진 빚은 두고두고 갚을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