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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콤플렉스' 벗어나라

힘·권력 집착, 민심 변화엔 둔감

취재팀  2002.12.27 10:4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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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민심’과 언론과의 상관 관계에 대한 토론이 뜨겁다.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는 “언론권력의 교체”로 해석했고, 원로 언론인 정경희씨는 “한나라당과 조중동간의 권력카르텔이 깨졌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익명을 요구한 중앙지 한 편집국장은 ‘천지개벽’이라는 말로 놀라움을 표시했다. 수용자들의 현실에 대한 안목과 판단력이 무섭게 성장했다는 분석이다. 김교만 문화일보 정치부 기자는 “인터넷의 성장으로 정보 독점이 해체됐다”고 진단했다. 언론학을 전공하는 이효성 교수(성균관대)와 주동황 교수(광운대)도 여기에 동조한다. “대안 정보를 접할 기회의 증가”(이효성) “정보를 판별하는 기회와 방식의 다양화”(주동황)로 “주류언론의 여론 지배력과 의제 설정력이 현저하게 감소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논의를 잘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있다. 언론이 민심의 변화를 읽지 못했다는 것이다. 민의의 현장으로부터 멀어져 있었고, 그 변화에 대단히 둔감했다는 사실이다. 반대의 시각에서 보면 민심이 언론을 버린 것이다. 자신의 삶을 대변하지 않는 기득권화된 언론에 대한 부정, ‘폭력적 여론몰이’에 대한 거부를 이번 대선을 통해 표현한 것이다. 주류 언론의 영향력 퇴조, 정보독점의 해체, 대안매체로서의 인터넷의 성장은 그 ‘변화된 민심’의 결과였다. 거대언론에 대한 불신은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새로운 정보채널에 대한 욕구로 이어졌고, 그것이 인터넷에서 대안을 찾아낸 것이다.



언론 신뢰도 추락

어쩌면 이는 예정된 결과였다. 민심과 멀어진 언론이 그것을 읽지 못했을 뿐이다. 지난 8월 언론재단은 미디어 수용자 조사를 통해 ‘의미있는’ 결과를 내놓았다. 언론 신뢰도와 관련한 조사에서 국민 4명중 1명(25.3%)만이 ‘신뢰한다’고 답했다. 절반 가까운 46%의 응답자는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언론의 역할과 기능을 잘 수행한다를 5점, 전혀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를 1점으로 주고 지수로 환산, 연도별로 비교한 결과 98년 3.1점, 2000년 3.01점에서 올해 2.75점으로 해마다 떨어졌다. 그나마 3점대 초반은 유지하던 신뢰지수는 올해 2.75로 추락했다.

이러한 신뢰도 추락의 원인으로 볼 수 있는 ‘언론에 대한 불만요인’을 조사한 결과 “보통사람보다 힘있고 권력있는 사람들의입장을대변한다”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요약하면 이런 것이다. 국민들은 언론을 “힘있고 권력있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것으로 생각했고, 그래서 믿지 않았다. 그 불신이 해마다 높아졌다는 것이 조사의 핵심이다. 언론에 대한 대선민심은 이같은 불신의 자연스러운 표출이었다.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국장은 최근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언론이 권력을 창출해 낼 수 있고, 권력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오만함을 버리지 않는 한, 밑바닥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변화를 감지할 수 없다”며 “언론권력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촉구했다. 민심을 대변해야 할 언론이 민심과 멀어진 원인을 ‘언론권력에 대한 집착’에서 찾은 것이다.



지나친 ‘주류’소속감 버려라

박 국장의 진단처럼 그간 우리 언론은 ‘주류 콤플렉스’에 걸려 있었다. 주류에서 벗어나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두려움, 그래서 그것은 ‘콤플렉스’다. 주류의 지위를 보장하는 힘에 집착했고 스스로 그 힘을 만드는 권력이 되려 했다. 그 수단은 정보의 ‘선택적 제공’이었고, 일방적 의제 설정과 폭력적 여론몰이였다.

투표일인 지난 19일, 조선일보가 정몽준의원의 ‘지지철회’와 관련, 사설을 통해 국민들에게 “지금까지의 판단기준 전체를 다시 뒤집을 것”과 “노후보는 곤란하다는 뜻을 슬기롭게 읽어내 투표하라”며 사실상 선거운동에 ‘개입’한 것도 주류에 대한 집착 때문으로 보여진다. 이 사설은 이해관계의 당사자인 정당 논평에서나 가능한 주장이었다. 그것을 거침없이 단행한 무모함, 그것은 주류에 대한 지나친 소속감의 결과였다.

최근 프레시안의 한 기사에 실린 조선일보 중견기자의 말은 시사적이다. 이 중견기자는 “조선일보는 메인스트림을 반영하기 때문에 여중생 사건 등을 다룰 때도 한미관계 등을 고려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그 결과다.

지난 6월 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조선일보를 포함한 주류언론은 아예 기사화하지 않거나 단신 처리했으며, 미군에 대한 무죄판결이 내려진 5개월여 동안 방관적 자세를 취했다. ‘단순사고’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메인스트림의 시각이었다. 그것이 여중생 사망 사건에 내재했던 ‘불평등한 한미관계의 개선’이라는 ‘인화성’을 발견하지 못하게 했다. ‘참여정치’의 새 장을 열었던 노사모 역시 주류언론의 지면에서는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이들시민세력이 예상과 달리 거대한 사회적 흐름과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다가오자 주류언론은 그것에 ‘반미’와 ‘불법’의 덧칠을 했다. ‘배후’를 의심했고 보이지 않는 손의 ‘조종’에 무게를 실어 보도했다.



사회 쟁점 승패 시각으로 보도

‘주류 콤플렉스’의 행동 양식은 ‘승리 이데올로기’와 ‘대결적 사고’다. 힘의 유지, 권력의 재생산이 최대의 관심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것을 부정하는 집단과 세력과의 관계를 승패의 문제로 연결시킨다. 정당이라면 모르지만 언론이 이런 사고와 행동 양식을 갖는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선거기간중 ‘도청’이나 후보자에 대한 폭로 공방을 동아 조선이 부각시킨 것이나 이인제 의원의 경선불복과 관련한 민주당 탈당을 신한국당 탈당 때와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도한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국민들에게 있어 도청이나 폭로공방은 낡은 정치의 또 하나의 추태였을 뿐이다. 그러나 이들 신문사는 그것을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승패의 문제로 보았다. 이인제 의원의 신한국당 탈당을 ‘민주주의의 타락’ ‘배신’ ‘반칙’ ‘교체돼야 할 정치인’으로 맹공했다가 민주당 탈당 때 ‘번민’ ‘이해’ 등 ‘동정론’으로 180도 다른 태도를 보인 것도 주류의 위치를 지키기 위한 대결적 사고에 기인한 것이다.

지금 우리 언론은 또 하나의 전환기를 맞고 있다. 인터넷이 도전을 넘어 당당한 매체로서의 지위를 확보했다. 그 밑바탕엔 기존 언론, 특히 주류를 자처해 온 언론에 대한 불신이 짙게 깔려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신뢰의 위기’다. 그것을 극복하는 것, 그것이 오늘 언론에 주어진 책무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앙지 편집국장은 “독자들의 의식은 선진국으로 바뀌었는데 언론보도는 후진국 수준”이라며 “이제 정론으로 가지 않으면 독자들의 외면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운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은 ‘낡은 사고의 교체’를 강조하면서, 그것을 위해서는 “과감한 인적청산 등 세대교체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희용 연합뉴스 미디어담당기자는 “토론과 고민이 살아있는 조직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