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언론사의 경영상 어려움을 들어 15개 언론사에 부과된 과징금 182억원 전액을 전격 취소하기로 결정한 것과 관련 그 배경을 놓고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민간기업에 대한 과징금 취소 결정이 전례가 없을 뿐 아니라 적자를 냈을 때만 과징금을 깎아줄 수 있도록 한 내부규정까지 위반하는 등 무리하게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공정위가 독자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권력 상층부의 ‘정치적 고려’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공정위 심판관리실 박상용 국장은 “지난해 12월 초 몇 개 언론사가 경영상 어려움을 토로하며 과징금을 면제해달라고 청원서를 냈다. 실제 모 신문사의 경우 과징금을 체납해 가압류에 들어가야 할 상황이었다”며 “지난해 30일 전원회의를 열고 언론사의 공익적 성격과 경영상 어려움을 감안해 법 위반 사실은 인정하면서 과징금만 면제해주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에 과징금을 면제받은 언론사 가운데 조선일보와 방송 3사는 99년부터 2001년까지 3년 연속 흑자를 기록해 경영상 어려움을 감안해 과징금을 취소했다는 공정위의 해명을 무색하게 했다. 또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도 2001년을 제외한 99년과 2000년 연속 흑자를 내 3년간의 당기순이익 등을 감안해 과징금을 깎아 줄 수 있도록 한 공정위 내부 규정을 위반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민간기업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과징금 전액을 면제해 준 전례가 없어 언론사에 대한 ‘특혜’라는 의혹을 사고 있다.
또 공정위는 이번 취소 결정과 관련 최근 동아 조선 등이 제기한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밝히고 있다. 가처분판결이기는 하지만 현재 9개 언론사가 소송을 제기해 고등법원에 계류중인 원안판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5월과 10월 서울고등법원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각각 제기한 과징금 납부명령 집행정지 가처분신청과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같은 해명 역시 설득력이 없기는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가처분신청은 원안 소송에 대한 판결 이전에 신청인의 심각한 손해를 예방하기 위해 ‘긴급한 필요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으로 원안 소송에 대한 판결과는 별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정위가 가처분 판결을 근거로 법 적용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면부당내부거래에 대한 결정 전체를 취소하는 것이 타당하지 법 위반 사실은 인정하면서 과징금만 면제해 준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입장 번복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노무현 당선자의 질책과 재조사 지시로 정리가 되기는 했으나 인수위는 당초 공정위의 과징금 취소 결정에 “이해할 수 없는 조치로 대단히 유감스럽다”며 “철저한 경위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가,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의 방문 직후 “더 이상 문제삼지 않겠다”며 입장을 번복했다. 임채정 인수위원장은 “공정위의 해명 중 납득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납득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면서도 “더 이상 문제삼지 않겠다”고 밝혀 서둘러 문제를 봉합하려는 듯한 인상을 줬다.
때문에 언론계 안팎에서는 “새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현정권에서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 아니겠느냐”며 “이 과정에 청와대의 실세가 개입했을 것”이라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에 대해 공정위와 청와대 모두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강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결정 과정에 대한 명확한 진상규명과 납득할 만한 조치가 뒤따르지 않는 한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박미영 기자 mypark@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