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배달된 지난호 기자협회보를 펼치니 온 지면이 언론개혁 문제로 도배된 듯 했다. 요즘 주변에서도 언론개혁에 대한 얘기를 자주 듣게 된다. 언론개혁이 이제 시대의 화두로 본격 등장한 느낌이다.
‘정권의 화두’가 아니라 ‘시대의 화두’라는 것, 바로 이 점에서 언론개혁의 절박성과 함께 당위성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앞으로 5년만 더 고생하자’는 얘기가 나온다는 어떤 신문은 상황을 몰라도 한참 모른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앞으로 언론의 사활은 정권이 아니라 독자나 시청자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기자협회보도 지적했듯 ‘독자 의식은 선진국 수준인데 언론 보도는 후진국 수준’인 것이 우리 언론이 처한 위기상황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낡은 사고의 교체’가 과제로 등장했다.
우리 언론의 후진적 보도와 낡은 사고는 여러 관점에서 숱하게 예시될 수 있겠으나 이 칼럼에서는 특히 여성에 대한 보도태도를 살펴보고 싶다.
수년 전에 치과의사를 하다가 사법시험에 합격한 한 여성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녀는 자신에 대한 신문 보도에 큰 불만을 드러냈다. 우선 자신이 ‘주부’라는 말을 쓰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떡 하니 제목에다 ‘주부 치과의사’가 사법시험에 합격했다고 박아놓은 것이다.
“나는 주부 이전에 치과의사예요. 내가 남자라면 그냥 치과의사라고 썼겠죠. 질문도 집안 일은 어떻게 했느냐 이런 거나 묻고 하지도 않은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감사한다’는 말이나 멋대로 써서 붙이고….”
흥분하는 그녀에게 나는 아마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그나마 ‘미녀 주부 치과의사’라고 안한 걸 다행으로 아세요.”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 대다수 (남자)기자들은 여성을 남성과 똑같은 독립된 주체로 보는 시각 자체를 갖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들에게 여성은 하는 일이 무엇이든, 결혼했을 경우 우선 주부이고 미혼일 경우 우선 미녀다. 즉 현모양처거나 성적 대상 둘 중의 하나인 셈이다. 주부나 미녀로 규정하기엔 성취가 너무 크고 개성이 강할 경우엔 누가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는지 몰라도 맹렬 여성이란 표현을 흔히 쓴다. 언론에서 이런 규정을 당한 한 여성이 왠지 기분이 나쁘다고 해 사전을 찾아봤더니 맹렬하다는 뜻이 ‘기세가 몹시 사납고 세차다’로 돼있다. 기분 나쁠 수밖에….
우리 언론의 이런‘수구적’ 여성관이 최근 가장 기세를 떨친 건 이른바 ‘북한미녀응원단 사건’에서다. 이 사건에서 드러난 우리 언론의 낡고 왜곡된 시각과 치졸함은 이미 많이 지적됐으므로 여기서 더 말하지는 않겠다. 다만 한 가지, 진보적이라는 언론의 시각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데 특히 한 주간지는 그녀들을 민족적 애정에 가득 차서 우리의 ‘누이(아마도 순결한)’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시각 자체가 남성의 시각이고 여성을 계속 남성과의 관계에서만 파악한다는 점에서 ‘낡아빠졌다’. 게다가 이런 남자들을 보면 어느 순간 ‘누이가 바람났다’며 칼을 들고 달려들까 봐 겁부터 덜컥 난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향한 새 시대의 새 해가 시작됐다. 제발 올해부턴 모든 언론에서 주부니 미녀니 하는 말들이 꼭 쓰여야 할 곳에서만 쓰이기 바란다. ‘여류’라는 괴상한 말도 사라져야 할 것이다. ‘남자 못지 않다’느니 ‘여장부’니 ‘여걸’이니, 또는 ‘남자답다’느니 ‘가장’이니 하는 남성 중심적 표현들도 구시대의 유물들과 함께 쓰레기통으로 던져졌으면 한다. 한 개인은 여성이거나 남성이기 이전에 똑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깨닫는 것, 그것이 바로 새 시대의 새 시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