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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36주년 특집 기고-기자 언론개혁 운동의 뿌리를 찾아서

일제와 타협하는 경영진에 조직적 대항, 박 정권 언론 길들이기에 맞서 기협 결성

박용규  2000.11.17 21: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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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규 상지대 교수





지난달 언론발전위 구성결의안이 국회에서 발의되면서 언론개혁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그러나 언론개혁 활동이 오늘날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권력과 자본의 탄압과 간섭으로 인해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마다 이를 질타하고 개혁하려는 몸짓들이 있었다. 언론인들이 앞장 설 때도 있었고 시민들이 나설 때도 있었다. 비록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 했지만, 이런 시도들을 통해 그나마 언론이 어느 정도 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25년 전조선 기자대회 열어

일제 하에서 한 동안 언론인들은 일제의 언론탄압에 맞서는 적극적 활동을 했다. 무명회나 철필구락부 같은 언론인 조직을 만들어 저항하기도 했고 1925년에는 전조선 기자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한편 20년대 중반 이후에는 일제에 대해 타협적 자세를 보이는 경영진에 반발해 기자들이 집단 퇴사하거나 조직적으로 대항하기도 했고, 일부 단체들이 이런 신문에 대해 비매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탄압을 가하는 일제뿐만 아니라 이에 순응하며 이윤추구에만 집착하는 경영진에 대해 언론인과 독자들이 함께 저항했던 것이다. 하지만 30년대 들어서서 이런 활동들이 모두 사라지고, 상당수의 언론인들은 친일 언론활동의 족적까지 남기게 됐다.

이승만 정권 하에서 언론인들은 언론탄압에 대해 비교적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활동을 했다. 이런 과정에서 1957년 4월에 편집인협회가 결성되기도 했다. 다만 신문산업의 영세성으로 인해 촌지 수수 등 언론인들의 비리가 적지 않았지만 이를 자율적으로 규제하고자 하는 시도는 거의 없었다. 권력과의 관계만이 중요했을 뿐 언론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삼엄한 유신시절 자유언론 실천운동

5·16쿠데타 후 군사정권은 카르텔 체제를 구축해 주고, 각종 금융·세제상 특혜까지 주면서 언론의 비판적 논조를 순치시켜 나갔다. 군사정권이 강력한 통제를 가하는 한편 각종 특혜를 제공하자 대부분의 신문들은 급격히 변화하게 됐다. 특히 1964년의 ‘언론윤리위원회법 파동’은 결과적으로는 언론사주들이 정권에 굴복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자질 향상, 언론자유 수호, 권익 옹호, 국제교류 강화 등을 표방한 기자협회가 창립되기도 했다.

1969년의 3선 개헌 후에 신문들의 논조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거세졌고언론화형식이거행되기도 했다. 이런 비난에 자극 받아 1971년과 1973년에 일부 신문사에서 자유언론실천선언이 있었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 뒤 1974년 3월 동아일보, 12월 한국일보에서 노조가 결성됐고, 1974년 가을에는 기자협회의 활동을 강화하려는 시도들도 이뤄졌다. 이런 가운데 10월 24일 동아일보에서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했고 이후 다른 언론사들로도 확산됐다. 또 12월 16일 조선일보에서는 유신체제를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외부기고문의 게재에 항의한 두 기자가 해고되자 이에 대해 기자들이 크게 반발하는 일도 생겼다.

박정희 정권이 동아일보에 대해 광고탄압을 가하자 많은 시민들은 격려광고와 성금으로 성원을 보냈다. 그러나 동아일보 경영진은 정권의 탄압에 굴복해 농성중인 기자들을 강제 해산 및 대량 해고해 사태를 해결하려고 했다. 또 조선일보에서도 해고된 두 기자의 복직을 요구하며 제작거부 농성을 하던 기자들을 경영진이 추가 해고하고 농성을 강제 해산시켰다. 이런 대량 해고조치를 통해 언론인들은 언론이 본연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권력뿐만 아니라 권력과 유착한 자본에 대해서도 맞서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6월 항쟁 자성 노조결성으로 이어져

80년대 중반까지 언론인들은 권력과 자본의 통제에 숨죽이며 높은 임금과 각종 혜택에 안주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시청료 납부거부 운동’이 확산됐고 또한 6월 항쟁 과정에서도 시위대가 일부 신문에 대해 극단적인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결국 6월 항쟁 이후 언론인들의 자성 움직임이 나타났고, 이런 움직임은 언론노조의 결성이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1987년 말 이후 결성되기 시작한 언론사 노조들은 공정보도를 실천하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한편 과거와는 달리 이제 시민단체들도 본격적으로 언론을 감시하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90년대 이후 언론사들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IMF까지 겪으면서 언론사 노조의 활동이 자사이기주의 또는 집단이기주의에 매몰됐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언론개혁이 권력과 자본의 부당한 간섭으로부터 자유롭고도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언론을 만드는 일이라면, 그 일은 누가 뭐라 해도 언론인들의 몫이다. 그러나 언론인들이 그 몫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시민들의 거센 언론개혁 요구에 떠밀려갈 수밖에 없다. 자율적 개혁이 안 된다면 시민들의 요구를수용해 외부에서추진하는 언론개혁 방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자협회 창립 36주년을 맞이해 언론인들이 36년 전 그날을 한 번만이라도 떠올려 봤으면 좋겠다. 새 천년에 처음으로 맞이하는 기자협회 창립 기념일이 권력과 자본에 맞섰던 초심으로 돌아가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