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차기정부의 언론정책 기조가 출범도 하기 전에 삐걱거리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첫 번째 조짐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언론사 과징금 철회에 대한 노 당선자측의 대응이다.
지난 달 30일 공정위가 15개 언론사에 대한 과징금 182억원 전액을 면제해준다는 결정을 내리자 바로 다음 날인 31일 노 당선자 본인과 인수위는 면제조치의 경위를 조사하겠다며 즉각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바로 그날 오후 인수위측은 이남기 공정위원장의 해명을 듣고 난 후 ‘더 이상 문제삼지 않겠다’며 불과 한나절만에 당초 입장을 번복했다. 다행히 이 문제는 노 당선자의 직접 개입으로 감사원의 특감에 회부됐다.
하지만 인수위측이 이남기 위원장의 해명 한마디에 그토록 손쉽게 당초 입장을 번복한 이유도 불분명할 뿐더러 노 당선자에게는 보고조차 하지 않은 채 인수위 독단으로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것도 이상하다. ‘원칙 있는 정치’ ‘언론개혁’ 등이 노 당선자의 평소 지론이었다는 사실을 인수위는 몰랐단 말인가.
두 번째 조짐은 차기 정부 비서실장 및 정무수석 보좌관 인선에 관한 지난 8일자 조선일보의 단독보도다. 김영삼 정부 때까지 조선일보가 개각 내용 등에 관해 족집게 보도를 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것은 물론 조선일보가 그 당시 정부 내 인사들과 두터운 인맥관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 당선자는 조선일보와는 인터뷰도 하지 않을 만큼 소원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정부 인사에 관한 기사는 내부제보자가 없는 한 절대로 정확히 보도할 수 없다는 점에서 차기 정부의 첫 번째 인선을 조선일보가 특종보도했다는 것은 분명 희한한 사태다.
이와 관련, 언론계와 정계 일각에서는 조선일보의 편집간부들이 노 당선자의 측근들과 최근 잇따라 만나고 있다는 얘기들이 나돌고 있다. 주로 조선일보측의 요청에 의해 만난다는 얘기다.
그러나 과연 이같은 만남이 노무현 정부에서도 계속돼야 하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언론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해명도 가능하겠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같은 만남은 구시대적인 것으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의 언론개혁이 실패로 끝난 이유는 우선 2001년의 세무조사와 공정위 조사 등에서 정략적 의도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정권 초기, 권력 실세가 언론사와의밀실거래를 통해 언론사의 협조를 구하려 한 시도도 결코 떳떳치 못한 시도였다는 지적들이 많다.
이번 언론사 과징금 철회에 관해서도 이 권력 실세의 작품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현 정부 퇴임 이후를 대비해 주요 언론사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조치가 아니냐는 것이다.
이제 정치권력과 언론간의 관계는 법과 원칙에 기초해야 한다. 법에 어긋난 것이라면 당연히 법에 따라 조치해야 하며 정부의 자의적 조치가 남발돼서는 안된다.
또 과거와 같은 밀실거래는 사라져야 한다. 편집간부와 정치권 인사가 은밀히 만나는 행태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 정부가 언론에 협조를 구할 일이 있으면 당당하게, 공개적으로 해야 한다.
노무현 차기정부의 언론개혁에 거는 시민사회와 언론의 기대는 크다. 노 당선자의 그간 언행에 비추어 그가 원칙있고 소신있는 언론개혁을 추진할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노 당선자와 그 측근들이 이같은 시민사회의 기대를 저버린다면 노무현 정권의 앞날도 결코 순탄하지는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