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기업의 덩치도 커지고 기업도 투명해지면서 이제는 ‘엉터리’ 비판 기사는 그냥 웃고 넘어갑니다. 하지만 여전히 온 몸을 던져서 막아야 하는 기사가 있는 건 사실이죠. 그게 뭐겠습니까? 흔하지는 않지만 바로 오너를 향한 비판 기사죠.” 얼마전 한 대기업 홍보팀장이 들려준 말이다. 그는 한국에서 재벌 오너 회장은 여전히 뭔가 다른 존재라고 했다.
또 다른 회사의 홍보 이사. 그는 자기처럼 임원급이 되면 주변 동료들과는 적당히 예의만 갖추면 되고 오직 태양만 잘 받들면 된다고 우스개 소리를 했다. 태양이라…. 기업체 사람들로부터 가끔 오너에 얽힌 얘기를 듣다보면 정말 효과적인 햇볕정책은 재벌 오너 회장들이 펼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오너에게만 잘 보이면 모든 게 밝아지고 따뜻해질 수 있으니….
하지만 햇볕의 강도가 너무 세기 때문일까? 한 대기업 부장이 들려준 모 재벌 총수의 영국 출장에 얽힌 얘기는 씁쓸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이역만리 이국 땅 시내에서 비즈니스를 하시던 회장님이 기차를 이용해 다음 약속 장소로 가기로 했는데, 열차 시간이 다 됐는데도 회장님의 일은 끝나지 않고 있었단다. 기차역에 미리 와 대기하고 있던 이 회사 직원의 무용담은 이 때부터 시작된다. 기차는 떠나려 하는 데 회장님은 안 오시고 이 기차를 놓치면 다음 기차는 서너 시간 뒤에나 오는 데, 난감한 상황에 빠지자 이 직원은 떠나는 기차 앞 철로 위에 누워버리는 결단을 내린다. 이 직원은 결국 소동에 이은 난동 끝에 경찰서까지 끌려갔지만 아무튼 한 직원의 살신성인으로 회장님은 30분 늦게 역사에 도착했어도 무사히 기차를 탔다는 얘기.
진짜일까 싶은 이 일화를 들려준 사람은 오너에 얽힌 일화들이 지극히 비합리적으로 보여도 여기에도 나름대로 효율성이 있다고 했다.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해야만 하는 오너 회장이 시골 역에 앉아 할 일 없이 서너 시간을 날리게 되면 그만큼 의미 있는 시간을 못 쓰게 되고, 회사 입장에서는 그만큼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일리 있는 얘기이고, 이는 또 그만큼 기업 최고 책임자의 생각이나 결정이 중요하다는 말도 된다. 하지만 최근 대기업 인사에서는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오너 회장의 피붙이들이 중용 되었다. 피는 물보다 비싸다지만 그래서 이번 대기업 인사에 일견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하지만, 외환위기 한 참 전에 인기를 끌었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이란 코미디 프로그램의 라이터 불 ‘반짝’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