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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흡연실 어디든 따라갑니다"

인수위 기자실 인수위원 개별접촉 금지…"취재 어렵다" 하소연

박주선 기자  2003.01.15 11:4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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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막이 없이 일렬로 주욱 배열해 놓은 책상. 각자 제자리에서 노트북을 쳐다보며 자판을 두드리거나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언뜻 보기에 대학 강의실 같다. 대한매일의 한 기자는 “다른 기자실과 달리 출입문을 향해 일렬로 자리를 배치해 놓아 처음에는 불쑥 들어가기도 민망했다”고 한다. 기자들간에 칸막이가 없어 보안을 유지하기도 힘들고, 전화취재에도 신경이 쓰인다는 얘기도 나온다. 현재 등록돼 있는 기자는 320여명, 상주하는 기자는 150여명이다.

드문드문 보이는 빈자리 주인들은 건너편 흡연실, 복도 끝 자판기 앞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삼삼오오 모여서 쉬고 있었다. 더러는 “인수위원들이 일요일에 쉬기 때문에 금요일엔 월요일 양식도 준비해야 한다”며 취재에 나섰다.

지난 10일 오후 5시경 인수위원회 기자실. 지난해 12월 30일 인수위원회가 출범한 이후 연일 비중있는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는 이곳에서 기자들을 만났다. 우선 취재가 어렵다는 게 공통된 반응이다. 출범 초기에는 인수위에서 오전 오후 한시간씩 기자들과 인수위원들간 접촉 시간을 제공했지만 지난 3일부터 개별접촉을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교만 문화일보 정치부 기자는 “검찰에서 수사에 착수하면 진행 상황을 언론에 일절 공개하지 않는데 그때와 취재양상이 비슷하다”며 “인수위원들과의 개별 접촉이 금지돼 있어 취재가 어렵다”고 말했다. 박승희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는 “인수위원들이 쉬러 나올 때 잠깐 만나서 물어본다. 한 시간 기다렸다 5분 취재하는 식”이라며 “전화통화를 하기도 하는데 인수위원들이 휴대폰 번호를 자주 바꾼다”고 말했다. 한 기자는 인수위원들이 화장실, 흡연실 갈 때, 엘리베이터를 탈 때 겨우 접촉이 가능하다며 ‘인수위 화장실 출입기자’, ‘흡연실 출입기자’라는 농담도 나온다고 한다. 여기에다 방송기자들은 녹취나 화면을 확보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주영진 SBS 정치부 기자는 “개별접촉이 용이하지 않아 녹취없이 내보내거나 과거 당선자 공약 관련 화면을 찾아 사용한다”고 전했다.

반면 데스크의 요구는 많고, 언론사간 취재경쟁도 심해 어느 출입처보다 스트레스가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신문사 인수위 팀장은 “대선 취재 때는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요즘엔 심적인 부담이 크다”며 “물먹지 않아야 하고, 기사를 쓰면 1면 머릿기사 등 비중있게 올라가 부담스럽다. 지난일주일이 한달 같았다”고 털어놨다.

메워야하는 지면수가 많고 취재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간간이 설익은 기사가 나오기도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출입기자는 “‘한 관계자…’, ‘알려졌다’는 식의 기사는 기자들도 서로 믿지 않는다”며 “연일 제각기 다른 1면 머릿기사가 나오지만 받아쓰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또다른 쓴소리도 있다. 김태선 KBS 정치부 기자는 “인수위원 개인 생각을 부풀려 보도하는 경우도 있다”며 “인수위나 국민들에게도 해가 되지만 언론사로서도 낭비”라고 지적했다. 박승희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는 “새정부가 여러 변화를 예고하는 상황에서 인수위에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하다. 언론도 독자들의 수요에 맞춰 신문을 만들 수밖에 없다. 다만 보도가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큰데 신중하지 못한 경우가 있어 아쉽다”고 말했다.

박주선 기자 sun@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