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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다시보기] 늑대소년의 함정

이재경 교수  2003.01.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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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월터 크롱카이트는 2002년 1월 KBS와의 인터뷰에서 언론이 보도를 잘 했으면 걸프전쟁을 예방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또 9·11 테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도 없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자 언론의 책임을 지적하는 글들이 언론계 내외에서 쏟아졌다. 한국 신문과 방송이 경보기능과 환경감시기능을 못했다는 질책이었다.

크롱카이트가 제기하는 문제는 미국 TV와 신문들이 국제보도를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네트워크 뉴스의 절반 이상을 국제문제로 채우던 미국 TV는 요즘은 하루 한 두 꼭지가 전부다. 로컬 뉴스를 보면 그나마 해외 토픽 수준으로 축소되고 말았다. 9·11이 터지기 전까지 미국인들은 알카에다나 탈레반은 커녕 빈라덴과 아프가니스탄도 모르고 살았다. 그러니 이슬람 세계와 아랍인들의 고민에 관심을 기울였을 리가 없다. 온 세계를 갈등과 불안, 전쟁의 공포로 몰아넣은 것은 결국 서로에 대한 몰이해와 무지라는 게 크롱카이트의 주장이고, 그에 대한 근본책임은 신문과 방송, 그리고 언론에서 일하는 기자들이 상당부분을 짊어져야 한다는 것이 또한 그의 생각이다. 한국 언론과 기자들도 IMF위기와 관련해 같은 책임을 벗기가 힘들다. 당시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관리들과 정권 관계자들은 한국 경제는 기초가 튼튼해서 문제없다는 펀다멘탈 이론을 되풀이했고 기자들은 아무 비판 없이 이들의 말을 증폭하고 재생산한 탓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이 문제를 꺼내는 이유는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한 보도가 여전히 부실하기 때문이다. 신문과 방송은 평양과 서울, 워싱턴, 북경, 모스크바, 동경 등 주요 거점 발 소식을 하루에도 몇 차례씩 긴급 뉴스로 전달한다. 취재원도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당선자 등 한국의 최고 지도자들에서부터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제임스 켈리 차관보, 빌 리차드슨 주지사 등 미국 정부인사들과 북한의 중앙통신이나 TV뉴스와 IAEA, 유엔의 사무국직원들과 NYT, WP 등 언론보도들에 이르기까지 역시 전 세계에 걸쳐 가용한 모든 자료가 동원된다. 이렇게 보면 북한 문제에 관한 한 언론의 조기 경보 기능은 IMF 위기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화됐다고 볼 수 있다. 엄청난 뉴스의 양과 내용의 긴박감이 온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는데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문제는 보도의 양이나 신속성이 아니라 보도 내용의 질이다. 도대체 한국 언론의 보도내용은 얼마나 충실한가. 신문과 TV뉴스가 다루는 내용은 모두 믿을 수 있는 사실을 담고 있는가. 언론에 인용되거나 논평 또는 기고를 하는 전문가들은 북핵 문제에 관해서 충분한 지식을 갖추고 있는가. 북핵 문제를 취재하는 기자들은 자신이 보도하는 내용에 대해 명예를 걸고 책임질 수 있는가.

안타깝지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서 자신 있게 긍정적인 답을 할 수 있는 언론사나 기자는 거의 없다. 그것이 일반적인 한국 언론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달 이상 이 문제에 대한 보도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지만 북한이 왜 이 시점에서 이 문제를 이러한 방식으로 터뜨렸는지를 알지 못한다. 나는 북한이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지, 앞으로 짧은 기간에 보유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이 미국과 갈등이 높아지면 한국을 공격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고, 이러한 사태가 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하려는 시도인지도 확신이 안 선다. 나는 미국의 대응 방식도 이해하지 못한다. 부시 대통령의 대 한국정책 기조가 무엇인지, 북한을 대하는 전략의 근본은 무엇인지도 신문을 보고는 알 수가 없다. 심지어 한국의 정부와 당선자 측은 무엇을 근거로 이 문제를 대화로 풀 수 있다고 자신하는지도 TV뉴스를 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기자는 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 신문은 기사를 싣는다. 논문을 싣지 않는다. 그러나 언론이 판단을 포기하고, 기자가 표피적 현상만 읽으려해서는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는 저널리즘은 불가능하다. 적어도 기본적 사실은 최선을 다해 확인하고, 안되면 책임 있는 사람에게 묻거나 아니면 기사를 쓰지 않는 게 정도다. 독자와 시청자의 시선 잡기에만 매달리는 호들갑스런 보도는 늑대 소년의 함정에 빠지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