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옌성의 투이호아시에서 열린 ‘한-베트남평화공원 준공식’은 무려 한나절에 걸쳐서 진행되었다. 연설은 물론이고 시와 노래, 행사장을 채운 그림들…. 무엇 하나 기억과 관계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
20년이 훨씬 더 지난 기억이 서로 다른 형식과 내용으로 그 작은 공원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청룡과 맹호, 백마부대가 모두 거쳐간 투이호아에서 한국측 연설자는 한결같이 미안하다고 말했고 베트남측 연설자는 또 한결같이 과거를 닫고 미래로 가자고 말했다. 동일한 사실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한 양측의 서로 다른 연설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몇 사람의 표정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한국군에게 가족을 모두 잃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분명 그 기억의 당사자였다. 그러나 한국측의 참석자들은 엄밀하게 말해서 그 기억의 직접적인 당사자들이 아니었다. 20년도 더 전에 투이호아에서 있었던 분명한 사실은 단 한가지였다. 한국군이 이 지역을 주둔했고, 민간인들이 죽었다. 그 기억이 누구에게는 뼈에 사무친 원한이 되고 다른 누구에게는 ‘나라의 부름’에 응답한 영광이 되었다. 동일한 순간에 대한 기억이 이렇게도 서로 다를 수가 있다. 누구의 기억에 착오가 있는 것인가. 기억에 관계한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한-베트남평화공원 준공식을 위해 푸옌성에 도착한 순간부터 중부베트남을 떠나기까지 사흘 동안 한국에서 온 일행을 쫓아다닌 세 대의 카메라가 있었다. 로이터통신과 NHK, VTV였다. 의례적인 취재의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다. 일행의 일부가 의구심과 불쾌감을 느낄 만큼 그들의 취재는 집요했다.
한국과 베트남, 당사국의 언론이 관심을 가진다면 그것이야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겠지만 외신, 특히 일본의 NHK가 보이는 집요한 관심에 대해서 한국인이라면 누구라도 거부감을 느낄만 했다. 투이호아가 남겨놓은 기억은 한국인들에게 결코 자랑이 되지 못하는 것이었다. 베트남 지방정부가 만들어 놓은 보고서에는 수천 명이 넘는 민간인들이 ‘박정희 군대’에 의해서 목숨을 잃었다.
필자 역시 일본이 어떻게 기억을 왜곡하는지를 베트남에서도 이미 보아왔기에 취재행위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호치민시의전쟁범죄박물관에 가면 몇 년 전에는 없었던 ‘평화의 돌’이라는 것이 새로이 들어서 있다. 원폭을 당한 일본이 히로시마의 돌을 베트남에 가져다놓은 의도는 너무나 명백하다. 일본도 베트남과 마찬가지로 미국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피해자로서 평화를 염원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기억 속에서는 자신들이 입은 피해만이 있지 자신이 행한 가해가 배제되어 있다.
문제제기를 받은 NHK의 PD는 한국이 일본과 달리 자신의 아픈 기억에 도전해가는 모습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이러한 사실 보도를 통해 일본이 자신의 고통스러운 기억에 도전하는 용기를 얻었으면 하는 의도로 취재를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어떤 내용으로 그의 취재가 보도되고 일본인들에게 어떤 뉘앙스로 전달되어질 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그들 일본의 몫이다. 그들이 이웃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외면하는 한 그들은 끝내 다른 이들의 이웃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아쉬웠던 것은 문학과 더불어 한국인의 기억에 가장 깊이 관여해야 할 한국 언론이 보여준 철저한 무관심이었다. 평화공원이 한 시사주간지의 캠페인을 통해 만들어져서 그런 것일까. 만약 그렇다고 하면 그것은 정당한 일일까.
한국의 젊은이들을 ‘더러운 전쟁’에 보낸 것이 누구인가. 꽃다발을 안겨주고 박수를 치며 보낼 때, 아니라고 말한 지성이 있었는가, 문학과 언론이 있었는가.
베트남전쟁에 대한 책임이 있다면 그 파병을 결정한 정부가 가장 일차적으로 지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그것을 부추긴 언론은 자신의 행위를 기억해야 한다.
당시의 신문을 펼쳐보라. 당시의 뉴스를 다시 돌려보라. 바로 그 신문을 읽고 그 뉴스를 들으며 베트남으로 갔던 참전군인들의 기억에 언론은 어떻게 관계했는가. 참전군인들이 그들의 기억을 베트남인들의 기억과 소통하도록 만드는데 기여해야 할 책무가 지금 우리의 언론에게 남아있지는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