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월. 벌써 끝머리다. 노조위원장을 마치고 현업 기자로 복귀한지 한달. ‘미디어 담당 수습 기자’의 꼬리표가 붙은 지 1개월째. 얼치기일망정 그래도 미디어담당 기자이고 싶은 걸까. 되짚어보는 1월은 내게 자꾸만 ‘우리 언론의 지난 한달 성적표는?’이라고 묻는다. 뭐라 답하기도 전에 마음이 불편해진다. 왜일까.
‘군림이 아닌 겸손’ ‘낮은 데로 임하는 언론’ ‘젊은 정신’…. 언론사 경영진들이 계미년의 문을 열면서 밝힌 메시지다. 거창한 것은 아니다. 언론이 진정 언론이고자 한다면 의당 다짐하고 지켜야 할 기본이다. 한달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지만 신년사를 다시 들춰본다. 한국 신문시장의 75% 이상을 과점하고 있는 3대 족벌신문의 ‘새 마음, 새 다짐’에 현미경을 들이대본다. 동아일보 김학준 사장은 ‘올해는 신뢰받는 신문을 위한 원년’이라고 했다. ‘독자위에 군림하는 태도로 가르치고 훈계하기보다는 정확하고 공정한 정보를 신속하게 제공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신년사다.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의 신년 어록에는 ‘군림하지 않고 낮은 데로 임하는 언론’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렇듯 신년사에는 향기가 난다. ‘언론권력’의 오만은 찾기 힘들다.
현실로 돌아온다. 불쾌해진다. 말의 성찬에 또 속았구나 싶다. 1개월의 지면을 들여다본 결과다. 신문은 지면으로 말한다. 굳이 현미경을 들이댈 필요도 없다. 대통령직 인수위 관련 보도, 북핵 관련 보도, ‘인터넷 살생부’ 보도 등 굵직굵직한 것만 되짚어보자. 갈등 부추키기, 사실왜곡과 편파, 음모론의 확대재생산…. 언론권력의 망상은 변함이 없다. 신년사는 그저 미사여구로 꾸며보는 장식품에 불과한 것인가.
기막힌 일은 또 있다. ‘조중동’ 3사의 발악적인 자전거판촉전쟁이다. 노무현 정권이 출범하면 단속이 대폭 강화되는 만큼 지금이 ‘독자 매수’의 마지막 기회란다. 광기 어린 아귀다툼은 한겨울 추위도 뒷전이다. ‘자전거 주고 하는 1등을 사양한다’ ‘판매시장 개혁에 앞장 서겠다’던 족벌신문 사주들의 사기 행각에 다름 아니다.
이중적 행태의 낯뜨거운 경연이다. 그럴듯한 수사(修辭)에 속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다. 진정한 반성과 사과의 자세가 되어있지 않은데 낮은 곳으로의 변화가 온전히 될 리 없다. ‘사과하지 않은언론’에서 신뢰와 도덕성을 찾기란 어렵다. 친일 부역의 역사에서, 인터넷 살생부 보도에 이르기까지 ‘그저 잊어주세요’다. 잠시, 저주에 가까운 독설을 퍼붓고 워싱턴으로 간 조선일보 김대중 이사 기자의 제1신 ‘배신감’이 오버랩된다. 많은 후배들이 간절하게 그간의 곡필에 대한 반성을 촉구했건만 물건너 되돌아온 답은 ‘꼴통보수 김대중은 죽지 않았다!’이다.
연말쯤 ‘2003년 신풍속, 언론·언론인들의 솔직한 반성 러시’라는 기사를 쓰고픈 얼치기 미디어 담당 기자의 소박한 기대를 아무래도 접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