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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핵시설 재가동 외신 '과장'에 국내언론 '맞장구'

김상철 기자  2003.02.12 11:3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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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원칙적 입장’ 수준…이전에도 수차례 언급

외신 단정적 보도하자 새로운 사실처럼 ‘중계’



‘북 핵시설 재가동’ 기사와 관련 이전부터 밝혀왔던 북측의 ‘원칙적 입장’ 표시가 외신을 통해 부각되면서 국내 언론도 이를 주요하게 인용, 결과적으로 한반도 긴장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일부 외신이 그동안 연합뉴스 등을 통해 보도돼 왔던 핵시설 가동에 대한 북한의 원칙적인 입장을 ‘핵시설 재가동’으로 기정사실화하자 국내 언론도 여기에 합세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일 새벽 AP통신은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5일 “전력생산을 위해 정상적으로 핵시설을 가동 중”이라고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는 기사를 송고했다. AP는 이 기사를 ‘북한 “핵시설 재가동중”’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해 북한의 핵시설 재가동설을 기정 사실화했다. 같은 날 USA투데이도 ‘북한 핵시설 재가동 선언’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북 외무성 대변인의 핵시설 가동 관련 발언은 “지금 미국은 우리가 전력생산을 위한 핵시설들의 가동을 재개하고 그 운영을 정상화하고 있는데 대하여”라는 대목이었다. 연합뉴스는 AP 보도 전후 관련기사에서 이같은 발언은 북한이 NPT 탈퇴 성명 후 여러 매체들을 통해 밝혀온 입장을 되풀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북측이 핵시설 가동 준비에 나섰음을 시사하는 보도는 적지 않았다. 지난 1월 18일자 조선신보는 평양발 기사에서 북한전기석탄공업성 신영성 부장의 말을 인용해 “동결이 해제된 핵시설들의 건설과 가동을 위한 실무적 조치들을 맡아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12월 28일 조선중앙통신은 “우리는 부득이 전력손실을 메꾸기 위해 핵시설들의 봉인과 감시카메라 제거를 자체로 하지 않을 수 없으며 전력생산을 시작할 준비를 개시하게 됐다”고 밝혔었다.

당시 이같은 보도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국내 언론은 지난 6일 AP 보도 이후 외신의 ‘북 핵시설 재가동’ 보도를 주요하게 처리했다. 6일자 대한매일 동아일보 세계일보 중앙일보 등은 1면에 외신이나 조선중앙통신을 인용해 ‘핵시설 재가동’ 기사를 내보냈다. 동아일보는 “이미 발전소가 재가동돼 전력을 생산하고 있음을 밝힌 것인지, 재가동을 위한 사전준비 작업을 ‘정상화하고 있다’고 표현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고덧붙였다.

6∼8일에는 핵시설 재가동 해설기사나 북한의 핵 관련 조치에 우려와 경고 메시지를 표명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 파월 국무장관의 발언 등이 관련기사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같은 보도는 상당 부분 ‘전력생산을 위한 핵시설들의 가동을 재개하고 그 운영을 정상화하고 있는데 대하여’라는 북측 발언을 근거로 핵시설 재가동을 기정사실화한 외신 보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와 관련 지난 7일 러시아의 소리방송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은 영변의 핵반응로가 가동에 들어갔다는 정보를 배포한 적이 없다고 한다. 평양측은 외무성 성명을 서방언론들이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는 같은 날 기자수첩에서 “북한의 입장은 지난해 12월 핵시설 재가동 선언, 지난달 10일 NPT 탈퇴 성명 이후 여러 차례 밝혀온 ‘원칙적 입장’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지만 미국의 AP통신 등은 핵시설 재가동설을 기정 사실화하며 위기감을 부채질했다”고 지적했다.

김상철 기자 ksoul@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