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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언론암흑기'…한때 '절필'까지 고민"

[인터뷰] 정경희씨

전관석 기자  2003.02.1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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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소송은 언론자유에 대한 소송…후배기자들 분발해야



사법부의 한나라당 패소판결에도 불구하고 정경희씨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재판이 진행된 지난 8개월 남짓한 시간동안 칠순에 접어든 원로 언론인이 겪었을 충격이 짐작됐다.

“악몽같았던 지난 몇 달간 격려해주고 지켜주던 언론계 인사들과 단체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며 말문을 연 정씨는 사법부 판결에 대한 언급 이전에 한나라당을 향해 한마디 했다. “한나라당의 소송은 일종의 테러입니다. 언론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죠.”

정씨는 이번 판결에 대해 “한나라당의 소송을 기각한 것은 우리 언론의 자유를 위해서 보탬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면서도 명예훼손 사실을 인정하고 정씨의 반소소송도 함께 기각한 재판부에 대해 불만을 나타냈다.

“명예훼손에 해당하나 공익성이 인정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닙니까. 이회창 후보의 명예훼손에 대해 이 후보가 아닌 한나라당이 소를 제기한 것에 대한 원고적법 여부에 대해서도 자세한 언급이 없습니다. 납득할 수 없어요.”

평생 참언론의 길을 걸었던 정씨에게 지난 8개월의 시간은 그야말로 ‘고통’이었다. 칼럼이 나간 후 욕설이 담긴 협박전화와 편지가 여의도 한 아파트에 독거하고 있는 정씨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늘 혼자 집에 있는데 전화벨이 울리면 받을지 말지를 한참 고민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전화를 받으면 수준낮은 욕설이 마구 쏟아져나왔지요.”

엄습하는 공포감에 시달리던 정씨는 한때 ‘절필선언’을 고민하기도 했다. 법을 통해 언론의 자유를 통제하려는 정치권과 이를 보도조차 않는 언론을 보며 이 나라에 민주와 정의가 살아있는가를 한참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했다. “한나라당이 소송을 제기한 뒤 이건 개인의 소송이 아니라 언론자유에 대한 소송이라고 생각했어요. 고민끝에 언론계 지인들을 모아놓고 ‘붓대를 꺽겠다’는 선언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주위의 만류와 격려를 받고 비로소 마음을 돌릴 수 있었지요.”

이처럼 충격의 나날을 보내던 정씨에게 이번에는 원고인 한나라당측에서 소 취하 제안을 해왔다. 결심이 있기 전인 지난해 11월 경의 일이다.

“내 소송을 도맡아 진행하고 있던 한겨레에 ‘칼럼 게재에 대해 사과를 한다면 소를 취하할 수 있으며 소송비용은 절반씩 부담하자’는 제의를 해왔다고 합니다. 한겨레에서 그제의를 단번에 거절했지요. 당시 한겨레의 결정에 고맙게 생각합니다.”

정씨는 요즘의 언론현실을 ‘최악의 암흑기’라고 못박았다. “언론은 옳고 그른 것을 정확히 판단하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언론의 보도를 보면 과연 그 용기를 보여주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권력카르텔의 정점에 서 있는 언론들이 논리를 펴는 기준은 과연 무엇인가요. 지금은 언론을 그토록 가혹하게 탄압했던 전두환 정권 때보다 더욱 혼돈스런 때입니다. 우리 언론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씨는 후배 기자들을 향해 직업적 사명감을 회복하라는 말을 남겼다.

“나는 쇠고랑을 찬 적도 없고 투옥경험도 없어 큰 고초를 겪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언론계가 어려웠을 때 양심을 팔거나 곡필하지 않았다고 자신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 후배 기자분들이 심기일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