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협회보가 미디어 서평 난을 신설했습니다. 이 난은 기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미디어 관련 서적을 격주에 한 권 소개합니다. 소개하는 서적은 국내 저술이나 또는 국내 번역서가 있는 외국 서적 위주로 하여 기자들의 독서로 이어지도록 합니다. 김영욱 언론재단 연구원과 이원락 전 기자협회 편집국장이 번갈아 집필하게 됩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이원락 전 기자협회 편집국장
이제 커뮤니케이션이란 용어는 그리 낯설지 않다. 흔히 쓰는 매스컴이란 표현은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줄임말이다. 언론이나 매스컴은 커뮤니케이션의 한 형태 또는 하위 단위이고, 기자란 언론 커뮤니케이션을 직업적으로 담당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뮤니케이션이란 개념이 내포하는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는 기자는 많지 않아 보인다.
커뮤니케이션은 사람들이 지식과 생각을 주고받는 모든 활동이다. 가족이나 친구 간 대화 등 개인적 의사소통은 물론이고 교육, 회합, 조직 활동 등이 모두 커뮤니케이션이다.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인간은 비로소 사회를 형성하였고 유지·발전시켜 왔다. 언론은 현대 사회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적 요소다. 따라서 기자로서 취재 대상인 사회를 꿰뚫어보기 위해서는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알아야 하며, 자신이 수행하는 언론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도 커뮤니케이션 구조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드러난 얼굴과 보이지 않는 손>(박승관 지음, 전예원)은 한국 사회의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분석한 책이다. 이 책이 내린 결론은 제목에 이미 드러나 있다. 저자는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구조가 공식적 부문과 비공식적 부문으로 이원화하여 있으며, 실질적인 의사 결정은 비공식적 부문이 담당하면서 공식적 부문은 비공식적 부문의 겉치레 장치로 활용된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명목과 실질이 괴리되어 있고, 말과 행동이 다른 이중적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특징으로 한다. 드러난 얼굴 뒤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정치인들은 국가와 민족을 입에 달고 다니지만 이들의 행동 기준은 오직 당선이다. 기업마다 사회 봉사·이익 환원을 사시로 내걸지만, 돈을 벌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인재를 양성하고 진리를 가르친다는 교육기관이 이사장의 사욕을 채우는 도구로 활용되곤 한다. 봉사와 희생을 강조하는 종교인들이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운모습도 볼 수 있다.
언론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나라 언론사 치고 정론을 표방하지 않는 데 없다. 그러나 언론 보도는 끝 없는 편파 시비에 휩싸여 있다. 지난 대선 때 많은 언론사가 보여준 행태는 분명히 정론과 한참 떨어져 있었다.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커뮤니케이션 연구의 고전적 틀인 정보원-메시지-채널-수신자-효과의 5단계 모형을 통해 이론화하였다. 그리고 92년 대선 당시 소위 ‘초원 복집 사건’의 대화를 분석해 그 이론을 입증하고자 했다.
이 책은 어렵거나 딱딱하지 않다. 마치 이야기를 풀어놓는 듯 해서 일단 집으면 순식간에 읽을 책이다. 어쩌면 쉽기 때문에 이 책의 가치를 가벼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언론학계를 포함한 한국 커뮤니케이션학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독창적 이론을, 그것도 거시적인 이론을 제시한 연구서다. 그 이론은 아주 설득력이 있어서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유용한 토대로 작용한다. 이 책을 미디어 서평의 첫째로 선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