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영 기자 2023.04.11 12:10:20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의 손자 전우원씨가 5·18 민주화운동 현장을 방문해 사과하고 일가에 대한 폭로를 이어가며 전국적인 화제가 되고 있다. 전두환 직계 가족의 첫 사죄란 평가에 언론 전반이 집중한 형국이지만 광주전남 지역언론에선 온도차가 감지된다. 방문 자체보다 전씨의 향후 행보, 또 다른 사죄 계기로서 의미에 더 주목하는 시선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30~31일 전씨의 광주 방문 등을 전후해 전국적으로 보도가 잇따랐다. ‘전두환 직계 가족의 첫 사죄’란 의미가 부여되며 지역언론도 전씨의 사과, 이를 용서한 5·18 단체의 입장 등을 담은 뉴스를 다수 내놨다. 사설을 통해 광주일보는 지난 3일 “모두가 알고 있지만 43년이 다 되도록 밝혀내지 못해 응어리로 남은 ‘전두환은 학살자’라는 진실을 손자의 입을 통해서나마 확인하게 된 것에 대한 반가움”을 말했고, 남도일보는 지난달 30일 “할아버지를 대신해 43년 만에 대를 이어 스스로 결행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라고 했다.
앞서 전직 대통령 노태우씨의 아들 노재헌씨에 이어 학살 주범 후손의 사죄는 자체로 평가될만하다. 정병호 광주일보 기자는 “(방문일이) 더운 날이었는데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국립묘지를 몇 시간 돌며 사죄를 했고 단체 분들은 생수통을 들어 물을 먹여주며 용서할 분위기는 됐던 것 같다”면서 “유가족 등은 대한민국에서, 5·18 맥락에서 약자·피해자로서 의식이 강했고 일견 폐쇄적일 수밖에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사죄를 받아들일 수 있는 시기가 된 듯싶다. 피해자가 아니라 용서하고 포용하는 주체로 거듭난다는 의미는 남다르다”고 했다.
전씨의 마약 투약 혐의, 이 입장이 일가 주류 의견은 아니란 점, 행보 자체를 집안 알력 다툼 으로 보는 시선에서 ‘진정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이정민 무등일보 취재2본부 기자(사회부 캡)는 지난 5일 칼럼에서 ‘사과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7일 통화에서 “학살 주범은 죽은 상태에서 연세가 많이 든 유족들로선 ‘죽기 전에 사과를 받았다’는 후련한 감정이 있을 수 있고 이 자체로도 의미는 있다”면서도 “전두환이 죽고 나서야 갑자기 폭로와 사과를 하고 지속적으로 언론노출을 하는 점에서 의구심은 남는다. 이 진정성에 대한 의심은 그의 향후 행보로만 해소될 수 있다”고 했다.
지역언론 전반에선 이번 방문을 그 자체보다 앞으로를 위한 계기로 일제히 의미부여 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광주시민의 따뜻한 용서가 다른 가해자들의 고백과 사죄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광주MBC), “이번 사죄가 5·18 진상 규명의 기폭제로 작용하길 기대한다”(남도일보), “진실규명과 전씨 일가의 미납추징금 환수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광남일보) 등 사설·기사 문구가 대표적이다. 수도권 매체 보도에서도 직·간접적으로 언급되지만 5·18의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 지역 매체의 관점은 당사자 입장으로서 여타 매체에서 고려될 필요가 크다.
특히 ‘전씨의 광주 방문’ 외에 지역언론 취재가 쉽지 않았던 현실에선 더욱 그렇다. KBS는 지난달 16일 귀국 전 전씨와 인터뷰를 했고, SBS ‘궁금한 이야기 Y’팀은 전씨 입국 후 광주 방문까지 모든 일정을 동행 취재했다. ‘폭로를 통한 의혹 제기’, ‘미납비자금 추징 가능성’ 등 핵심 사안에 소수 대형 수도권 매체가 주도권을 잡아온 상황이다. 조윤정 kbc광주방송 기자는 “전두환 사망 후 관심이 잦아드는 분위기에서 다시금 5·18을 말할 수 있게 돼 반갑지만 이미 라디오와 TV에선 했던 말이 반복되고 비자금 추징이나 암매장 등 진상위 활동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며 “이를 시발점으로 지도부, 군부 가족 등 말하지 못했던 이들이 나와주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치열한 취재환경에선 말, 행동, 복장 등 일거수일투족을 연예인 신상 전하듯 다루기 쉬운데 미래지향적인 문제에 함께 집중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