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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다시보기] 노무현 시대와 언론 패러다임

언론다시보기  2003.02.19 11: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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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프레시안 대표이사





해방 직후 동아, 조선일보의 인기는 형편없었다고 한다. 인기는 커녕 어깨도 제대로 펼 입장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해방이 가져온 자주독립의 열기 속에서 친일의 흔적을 뚜렷이 간직하고 있는 이 두 신문이 큰소리 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두 ‘민족언론’은 자신의 열세를 점차 만회해 간다. 무엇보다도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승만의 남한 단독정부 노선이 현실화됐기 때문이다. 특히 좌파는 물론 통일정부를 지향했던 김구 계열의 한국독립당마저 정권에서 완전히 배제되면서 한국민주당과 같은 뿌리의 동아일보는 유력 야당지로서 한국언론을 리드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이른바 ‘동아일보 헤게모니’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한민당은 이승만, 박정희 정권에 줄곧 반대했다는 점에서 정통 야당의 위치를 차지하지만 미국이 그어놓은 ‘친미 반공’이라는 한계를 절대로 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들 정권과 공통점을 갖는다. 압도적 미국의 힘에 의한 남한의 협애한 정치스펙트럼이 낳은 결과였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한국언론 헤게모니의 주역은 동아일보에서 조선일보로 교체된다. 조선일보가 박 정권 이후 정권과의 거래에 능란한 수완을 발휘한 탓도 있겠지만 1975년 이른바 동아사태에서 자사 소속의 엘리트 언론인 1백30여명을 길거리로 내몬 동아일보 사주 측의 자해적 조치가 더 큰 요인이었다고 생각된다.

어쨌거나 1980년 중반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조선일보는 한국언론의 ‘교과서’였다. 전 편집인 김대중씨가 한 시사주간지의 여론조사에서 10년 가까이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으로 선정된 것도 이러한 조선일보의 위상에 힘입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막강했던 조선일보 헤게모니도 90년대 후반 이후 무너지고 있다. ‘안티조선’과 같은 시민운동, 한경대로 지칭되는 제도언론 내의 대항세력의 성장, 그리고 인터넷 등 대안언론의 등장을 요인으로 꼽을 수 있겠다. 이와 함께 정치주도 세력의 변화도 빼놓을 수 없다.

김대중 정권의 탄생은 해방 후 최초의 진정한 정권교체였다. 나아가 노무현 정권은 해방공간의 정치와는 무관한 최초의 정권이다. 정치인 노무현은 80년대의 민주화운동 속에서 탄생했으며 해방공간의 정치와는 인연도, 채무도, 책임도 없다.

“미국에게 할 말은 하겠다” “미국과 입장을 달리 하는 한이 있더라도전쟁은 안 된다”는 등 그의 거침없는 발언은 이러한 정치적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노무현 당선자의 이같은 발언에 동아와 조선 등은 물론 질색을 한다. 그들의 정치적 상상력이 해방공간에 묶여 있는 탓이다. 그들에게 ‘친미·반공’은 절대절명의 명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냉전 종식 이후 ‘반공’은 이제 시효 잃은 구호이며, 전세계 1천5백만명의 시민들이 반 이라크전 구호를 외치는 지금 미국의 도덕적 권위가 심각하게 도전받고 있음을, 따라서 무조건적 친미가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에 무지하거나, 아니면 애써 간과하고 있다. 한마디로 동아·조선의 요즘 보도태도는 시대착오적이라 할 수 있다.

노무현 시대의 한반도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 우리의 주체적 대응에 따라 엄청난 도약을 할 수도 있으며 반대로 비참한 타락을 할 가능성도 있다. 이미 동아와 조선은 반동적 노선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의 언론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우리 모두의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