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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경보기능 '고장'

김상철 박주선  2003.02.26 11: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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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참사

‘지하철노조 수차례 지적…예방보도 외면

‘안전불감증’ 언론이 더 심각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쏟아지는 지하철 안전 문제에 대한 언론보도가 ‘한발 늦었다’는 아쉬움을 주고 있다. ‘안전불감증’을 지적하는 언론 역시 ‘예방보도’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이번 참사 이전까지 지하철 안전과 관련, 언론이 본격적인 점검보도를 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2000년 경향신문의 사회 전반의 안전시스템에 대한 시리즈, 중앙일보의 지하철 콘크리트 중성화 실태 정도다. 또 과거 보도는 ‘지하철 침수’ ‘리프트 추락사’ ‘탈선’ 등 사고 발생 뒤 단순보도를 하거나 ‘누수’ ‘유해물질 검출’ 등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문제를 일회성으로 전하는 데 머물렀다. ‘1인 승무제’ ‘인력 부족’ ‘내장재’ 등 지하철의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는 사고 후에야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욱이 지하철 안전문제는 언론이 접근하기 어려운 사안이 아니었다. 이번 참사의 피해를 키웠던 원인으로 꼽히는 ‘1인 승무제’의 경우 지하철 노조에서 ‘안전운행을 위협한다’며 수차례 지적했던 문제다. 사고 후 대다수 언론은 “기관사 1명이 승차하는 시스템이어서 기관사가 전동차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분석했으나 이는 ‘사후약방문’에 불과했다. 97∼98년 서울도시철도 대구지하철 부산지하철에 ‘1인 승무제’를 실시하고, 2001년 분당선에 ‘1인 승무제’를 도입할 당시 그 위험성에 대한 점검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부산지하철 노조는 파업까지 벌이면서 이를 반대했으나 언론은 무관심했고, 분당선의 경우 문화일보 한겨레가 “‘1인 승무제’ 시험운행 이후 7건의 사고가 발생했다”는 노조측 주장을 별도 기사로 싣는 정도였을 뿐 대부분 언론은 노사간 입장차로만 다뤘다.

최근 언론에서 지적되는 ‘99년 이후 정비사 400여명 감원’ ‘안전교육 부실’ 역시 이미 노출돼 있던 문제들이다. 공기업 경영 합리화의 일환으로 서울지하철공사는 99년부터 1400여명을 줄였고, 노조는 안전문제 등을 이유로 감원을 반대했지만 언론은 ‘안전’보다는 ‘효율’에 초점을 맞췄다.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노조파업에 대해서도 ‘지하철 파업, 원칙대로 처리해야’(조선, 중앙) ‘파업확산에 경제 결딴난다’(세계) ‘승객의 인내도 한계가 있다’(한국) 등의 주문이 이어졌다.

장승완서울지하철노조 법규부장은 “정작 안전불감증에 걸린 것은 언론이었다”며 “수차례 보도자료, 기자회견을 통해 감원에 따른 안전문제를 제기했지만 언론은 ‘부채가 얼만데 파업이냐’ ‘시민의 발을 볼모로 잡고 있다’는 식으로 본질적인 문제는 외면했다”고 주장했다.

지하철 안전 문제는 국정감사에서도 수차례 제기된 바 있으나 언론의 탐사보도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지하철1∼4호선 역사 누수 작년 3배’ ‘지하철 내 방사성 물질 검출’ ‘지하철역 화생방 취약’ ‘지하철 콘크리트 균열’ 등 단발성 스트레이트 보도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박주선 기자 sun@journalist.or.kr







기업비리

기업 비판 실종…발굴기사 거의 없어

비리 거론돼도 보도엔 신중(?)



기업비리에 대한 언론의 ‘경보 기능’은 어느 수준인가.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유도하고 비리를 감시하는 기능이 미비하다는 지적이 높다.

이같은 양상은 기업 비리에 대한 발굴기사가 적어지고, 일부 언론에서 그런 기사를 보도하더라도 잘 받지 않는 ‘신중함’으로 이어진다. ‘대기업이나 광고주 앞에서 작아지는 언론’이라는 혐의가 여전히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검찰 수사를 계기로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있는 SK 관련 기사는 언론의 기업관련 보도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SK측의 주요 혐의로 거론된 워커힐 주식 부당거래와 관련 YTN은 지난해 12월 “최태원 SK 회장이 지난 3월 자신이 갖고 있던 워커힐호텔 주식을 적정 주가보다 비싼 값에 계열사에 팔고 주력 계열사인 SK주식회사의 지분을 크게 늘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YTN 보도는 당시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지난해 연말 신문들의 SK 관련기사는 ‘40대 임원 대거 발탁’ ‘임원 60명 대거승진’ 등의 인사 기사였다.

지난달 8일 참여연대가 최태원 SK 회장과 손길승 그룹회장 등을 검찰에 고발했을 때도 ‘시민단체들 기업감시 급증…재계 곤혹’(세계) ‘홍역 치르는 재벌기업주’(한국) 등의 기사를 제외하면 대부분 1~2단으로 단순 처리했다. 기사는 검찰의 수사착수 이후 참여연대가 소송을 제기한 삼성 한화 두산 등의 혐의가 묶여져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비리 관련 발굴기사가 적고, 있어도 보도확산이 쉽지 않으며, 주요사안의 경우 시민단체 활동을 빌어 이를 중계하는 기업 보도 일반의 양상을 보여주는것이다. 실제로 언론의 기업비리 관련 ‘특종’ 성적은 미비한 게 사실이다. 지난 90년부터 지난달 1월까지 기자협회가 매달 선정하는 이달의 기자상의 경우 입찰 담합, 식품 안전 등을 제외한 기업비리 관련 수상작은 10편을 밑돌고 있다. 전체 수상작 590여건 가운데 2%가 안되는 수준이다.

기자들은 기업취재에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대기업을 출입하는 한 기자는 “기본적으로 취재가 어렵다. 특히 공정공시제도 시행 이후에는 1차자료 확보가 더더욱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금감원에서도 소송에 이르기 전까지는 사실 확인에 인색하기 때문에 취재가 어렵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또다른 기자는 “참여연대의 경우 기업 회계자료 등을 분석할 전문인력이 있기 때문에 문제제기가 가능하다”며 “아직 언론은 이런 수준에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같은 어려움을 감안하더라도, 기업보도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높지 않은 형편이다. 김영호 전 세계일보 편집국장은 “기자들이 전문성으로 무장되지 못한 채 기본적으로 재계 보호논리에 빠져있기 때문에 비리관련 기사가 없는 것”이라며 “여기에는 늘어난 지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광고주로서의 영향력도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상철 기자 ksoul@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