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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사고 뒤엔 꼭 '언론'사고 있다

대구지하철 참사보도 점검

취재팀  2003.02.26 11: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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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적 무분별 현장 ‘난입’으로 훼손 ‘한몫’

대형참사 알면서도 스포츠 중계 ‘딴세상’

용의자 사진·실명…아들까지 ‘범죄자’ 취급

‘장애’비관 집중 부각 장애인 편견 부추겨





사고도 수습도 총체적 구조적 부실로 얼룩졌다는 비판을 사고 있는 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와 관련, 언론의 보도태도 역시 곳곳에서 ‘부실’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높다. 취재경쟁에서 비롯된 현장훼손, 섣부른 용의자 보도, 초기 늑장방송 등이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현장훼손” 비판하며 현장훼손



사고현장 훼손을 비판한 언론들이 현장훼손에 일조 했다는 눈총을 사고 있다. 사고 이후 언론은 사고대책본부측이 열차를 견인하고 승강장 일대의 잔해를 치우는 한편 주변을 물청소까지 한 사실이 밝혀지자 “모든 사건·사고처리에서 현장 통제와 보존은 기본”이라며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그러나 현장훼손 혐의에 대해서는 언론도 자유롭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각 신문과 방송들은 사고 지하철 등 현장사진이나 현장 리포트를 내보냈다. 문화일보는 지난 22일자 관련기사에서 “사고 당일인 18일 오후 경찰과 언론사 취재진 등 인명구조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 수백명이 사고 현장에 마구잡이로 들어가 사고현장은 일찌감치 훼손되기 시작했다”고 꼬집었다. 현장을 취재한 한 사진기자는 “관계자들이 더러 진입을 막기도 했지만 몇몇이 빠져 들어가는데 가만있으면 결국 물먹는 것 아니냐”며 “속으로는 ‘우리가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다들 구조현장에 들어가 사진 찍느라 진땀을 뺐다”고 말했다.

한 방송사 차장은 “심지어 사건 초기에 ‘방독면 쓰고 현장으로 들어가라’는 간부도 있었다”며 “현장이 기자들에 의해 훼손되면 가장 중요한 신원확인 단서들이 훼손될 여지가 높다. 언론의 편의주의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비판했다. 무분별한 현장취재 경쟁이라는 고질적인 문제가 거론되면서 총체적인 차원의 취재가이드라인 마련 필요성이 또다시 제기되고 있다. 대한매일 황성기 도쿄특파원은 지난 22일자 칼럼에서 “대구와 비슷한 참사가 일본에서 일어났다면 보도진들이 현장과 병원, 경찰서, 유족들의 집을 누비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언급했다.



방송사 초기보도 늑장 도마에



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에 대한 지상파 방송사들의 늑장 대응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사고 첫날 사태의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스포츠경기 생중계 등 기존 정규편성을 유지하거나 정파하는 등 비상방송 체제를 제대로 가동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는 지난 18일 오전 9시 55분 사고발생 이후 5분∼10분짜리 특보를 몇차례 방송하긴 했으나 본격적인 재난방송은 4∼6시간이 지난 뒤에야 편성했다. 특히 MBC와 SBS는 이날 오후 2시부터 여자프로농구와 검도대회를 취소하지 않고 생중계 하면서 사고 소식은 짧은 뉴스특보와 자막으로 처리하는데 그쳤다. 결국 MBC와 SBS의 본격적인 재난방송은 오후 4시를 넘어서야 시작됐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사고 첫날 재난방송 체제를 신속하게 가동하지 못한 것과 관련 안이한 사태 판단과 그에 따른 초기 대처 미흡, 메인뉴스 제작에 급급한 보도 관행 등이 문제점으로 제기되고 있다. KBS 보도국 한 기자는 “사상자가 100여명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 이미 오전 11시 30분경에 확인됐는데도 낮 12시 특보 이후 정규프로그램과 정파가 이어진 것은 문제가 있다”며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현장 스케치와 사고 경위, 구조활동 등을 30분이건 1시간이건 계속 전달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다른 한 기자도 “대형 참사가 발생하면 당일 9시뉴스도 속보체제로 가면 되는데 중간 정파와 정규방송으로 시간을 벌면서 뉴스 제작에 매달리는 것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성급한 용의자 보도 재고해야



방화용의자 보도에 대한 언론의 신중한 태도가 아쉽다는 지적이 높다. 범행 가능성이 높은 용의자라고 하더라도 실명보도가 필요했는지, 범죄와 장애의 관련성이 입증되지 않았는데도 ‘장애인 범죄’로 몰아가야 했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사고 직후 서울지역 10개 일간지는 방화 용의자 김모씨의 얼굴 사진과 실명을 일제히 게재했다. 대한매일과 조선일보 등은 경찰 수사가 막 시작된 19일자에 용의자라는 표현 대신 ‘범인’이라는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굿데이는 ‘본지 기자 방문에 용의자 차남 도주…택시 추격전’이라는 기사에서 “용의자 김모씨의 차남 김모씨 집으로 찾아가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택시를 타고 도망쳤다. 모범택시를 타고 그를 추적…”이라면서 ‘도주’ ‘추적’ 등 아들까지 범죄자로 취급했다.

한 신문사 편집국장은 “국민적 공분이 큰 사안이고 현행범에 가까워 큰 고민을 하지 않고 실명으로 보도했다”고말했다. 그러나 김택수 변호사는 “공익성을 위해 신원을 공개해야만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용의자에 대해 익명 보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번 사안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범죄가 용의자의 장애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지 확인되기도 전에 ‘전동차서 정신질환자가 방화’(조선) ‘50대 중풍 정신질환자의 소행으로 드러나’(세계) ‘뇌졸중 앓은 장애자 평소 “불지를 것” 자주 말해’(중앙) ‘뇌중풍으로 지체장애 2급’(동아) 등 언론이 ‘장애’를 부각시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부추겼다는 지적을 사고 있다.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가 지난 19일 “용의자의 범행동기, 정신질환 병력에 대한 구체적인 확인 없이 정신질환이 범행의 직접적인 원인인 것처럼 보도되는 것은 시정돼야 한다”고 지적할 정도였다.

김상철 서정은 박주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