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년을 받아 뉴저지주 럿거스 대학에 온지 3주가 돼간다. 이곳에 온 목적 가운데 하나는 한 해 동안 좋은 신문, 좋은 언론의 조건은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일이다. 이러한 일은 이론적인 책을 통해서는 알기 어려워, 미국인들이 현실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일류 신문과 방송 뉴스의 제작 관행을 체험해 보고자 함이다. 아직은 생활의 틀이 잡히지 않아 미국언론 체험이 체계적으로 이뤄지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2∼3일에 한 번꼴로 사보는 뉴욕타임즈는 미국 최고 신문의 언론철학과 제작기준을 짐작하게 해준다.
새해를 맞아 한국신문들은 다시 혁명적인 지면개편을 선도한다고 홍보에 열중이고, 사고가 아니라 기사지면을 통해서까지 자사의 개혁 정신을 독자들에게 강조한다. 한국신문의 지면개혁은 뉴욕타임즈의 제작기준에 비추면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도 흥미로운 관심거리다. 나는 잘못하면 뉴욕타임즈를 우상화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다. 신문 방송 잡지 등 문화산업은 철저히 해당사회의 사회·문화적 문맥에 적응해야 함도 잘 안다. 그러나 그렇다고 앞서가는 사회로부터 학습하기를 포기하는 일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더구나 한국사회는 수년전부터 언론개혁을 둘러싼 논쟁을 계속하고 있다. 무엇을 개혁하는가와 관련해서도 뉴욕타임즈를 통한 한국신문 돌아보기는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우선 두 가지 느낌만을 정리해 보려 한다. 하나는 뉴욕타임즈가 광고를 취급하는 방식이고, 두번째 관찰사항은 국제기사를 다루는 자세다. 뉴욕타임즈는 한국신문들과는 광고를 게재하는 기본자세가 철저하게 다르다. 역시 가장 눈에 띠는 차이는 1면에 광고가 전혀 실리지 않는 점이다. 한국의 모든 신문이 1면 하단에 3단 광고를 게재하는 현실과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이러한 원칙은 경제 문화 스포츠 여행 과학 국제경제 등 각 섹션의 표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경향신문이 90년대 중반 잠시 1면 광고를 없앤 사례가 있었지만 한국신문의 경영진들은 1면 광고의 수익성이 너무 좋기 때문에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무엇을 위해 신문은 존재하는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로 하면, 미국이 우리보다 한참 앞이다. 그렇지만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과 상업성이 부딪치는 상황에서 뉴욕타임즈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를보여준다. 신문은 광고가 아니라 기사를 위해, 광고주가 아니라 독자를 위해 존재해야 존경받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똑같은 원칙은 오피니언 면에도 그대로 관철된다. 뉴욕타임즈는 사설과 오피니언을 싣는 OP-ED면에도 광고를 싣지 않는다. 혹시 하나 정도를 게재할 때는 광고의 모양을 의견 글처럼 이미지 없이 텍스트 만으로 구성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 또한 대부분 우리신문의 오피니언면 편집과는 다른 관행이다.
뉴욕타임즈를 보고 더 크게 놀란 사실은 이 신문이 국제기사를 다루는 자세다. 우리나라로 하면 종합섹션 격인 A섹션은 대체로 32면 정도가 발행되는데, 그 가운데 15∼16면 정도가 매일 국제기사로 채워진다. 광고가 차지하는 지면을 절반 정도로 어림하더라도 7∼8면이 국제면이라면 하루에 40∼50개의 국제기사가 실린다는 얘기다. 우리 신문들이 겨우 두 면 정도를 국제기사에 할당하는 현실과 역시 극명하게 대비되는 사실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기사들을 모두 뉴욕타임즈 기자들이 작성한다는 점이다. 70∼80퍼센트 이상을 주요통신사에 의존하는 우리의 현실과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표다. 뉴욕타임즈의 이러한 제작원칙은 국민을 선도한다고 글로벌 스탠다드 캠페인을 벌이고, 세계화를 주장하면서도 해외특파원을 줄여왔던 한국언론이 어떻게 스스로 우물안 개구리가 됐고, 독자들마저 그렇게 만들고 있는지를 돌아보도록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