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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경제부 기자의 웃음

기자칼럼  2003.02.26 11:2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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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국 문화일보 경제부 기자



기자생활을 하는 12년 동안 운이 좋았는지, 나빴는지 모르지만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문화 체육부 기획취재팀 등 편집국의 대부분 부서에서 근무하는 역마살 기자생활을 했다. 그 과정에서 지켜본 한국경제는 과거 ‘한강의 기적’과 같은 명성에도 불구하고 정치·사회 등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대단히 취약하다는 느낌을 주곤했다. 한 마디로 우리 경제 체제는 전근대적인 시스템의 낙후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한국경제는 각 경제 주체들이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전에는 기업의 체계적인 경영관리나 경영건전성 확보, 소비자의 자기 권리찾기 의식도 갖지 못했던 원시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이후에는 환란 극복과 구조조정에 힘을 기울이다 보니 바람직한 경제시스템 구축에는 미흡할 수밖에 없었다. 유사한 낙후된 시스템을 가진 언론사들의 여건상 경제 분야를 담당하는 기자들도 그런 악순환의 고리처럼 연결된 ‘시스템의 부실’에 발이 묶여 탐사보도(In―depth Reporting)는 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당장 검찰수사로 시작돼 `새 정부의 재벌 길들이기’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는 SK의 변칙증여사건 수사를 보자. 이 사건은 관련된 경제 주체들이 그동안의 잘못된 관행을 방치했고 그에 편승해 자기 이익챙기기에 골몰한 것에 본질이 있지만, 그날그날 기사 채우기에 허덕인 대부분의 언론들은 제대로 본질을 지적하지 못했다. 지난 99년 이재용 후계체제 구축을 위한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이용한 삼성그룹의 변칙증여 의혹부터 재벌들의 변칙증여가 줄을 이었지만 그 문제점을 심층보도하는데 이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 재벌의 부당한 `부의 세습’ 관행은 계속돼 왔지만 정치권은 검은 돈을 챙기는데 급급했고, 정부관료들도 형식적인 감독과 관리를 하다가 퇴임 후에는 낙하산 인사 등으로 자기 자리 찾기에 골몰한 것이 사실이다. 변칙상속이 공공연한 관행이었는데 총수를 구속하는 극약처방을 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는 재계 역시 정경유착의 관행에 기대 하청기업이나 소비자를 우롱하는 부당한 경영관행에 자족해온 것에 제 발이 저릴 것이다. 언론마저 광고수주 등 현실적인 제약으로 감시에 소홀했고 그 틈에 어느새 국가경제 시스템이 허약해졌고 신용불량자가 270만명을 넘어서는 등 서민들만 고통에 허덕이고 있다.

정보화와 세계화로 열린 변화의 시대를 맞아 기득권과 부당한 관행을 고집하다가는 국민들의 분노를 사기 십상이다. 이제는 정치권도 검은 돈 관행에서 벗어나 정직하고 실력있는 기업을 적극 지원하는 시스템 구축에 나서야한다. 기업 역시 스스로 집단소송제 등 각종 개혁체제를 정비하고 변칙상속 등 부도덕한 관행에서 벗어나 전문경영인을 우대하고 소비자를 생각하는 경영에 나서야한다. 그 생각과 동시에 그동안 소극적이었던 자신을 반성하고 부당한 경영관행 감시와 한국경제의 선진화를 위해 적극 취재에 나설 각오를 다지는 필자의 모습을 그리다보니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절로 띄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