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 방화참사 취재에 정신없이 매달렸던 취재기자로서 이번 참사로 희생된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언론인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점을 먼저 사죄한다. 대형사고 때마다 언론사간에 벌어지는 치열한 취재와 특종경쟁 속에서 확인되지 않은 특종과 속보를 쏟아내는 악순환은 이번 대구지하철 방화참사 보도에서도 여전히 재연됐다. 사건 현장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가장 먼저 현장에 뛰어든 기자들은 지금까지도 “본사가 독점 취재한, 단독 입수한”이라는 미사여구를 즐겨 붙여가며 확인되지 않은 특종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아니면 말고’ 식의 확인되지 않은 추측기사들이 쏟아지면서 많은 독자와 시청자들이 대구지하철 방화참사의 본질적 문제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이번 참사를 일으킨 방화용의자가 사고 당일 한 통신사의 최초 보도와 대구시장의 담화문에서 장애인 정신질환자로 표현되면서 사고 이튿날까지 대부분의 언론은 이번 참사를 장애인 정신질환자가 저지른 엽기적인 행각으로 부각시켜 보도했다. 이 보도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심화됐고, 정신질환자를 사회에서 격리시키라는 시민들의 분노와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번 화재는 중풍 2급 장애자가 신병을 비관해 저지른 범행이고, 방화보다는 지하철공사의 안일한 대처가 화를 키운 사실이 드러나면서 장애인 정신질환자의 우발적 범행이라는 보도는 모든 언론에서 슬쩍 사라졌다.
이번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한 것 중에 하나는 쓰레기 더미에서 희생자의 발과 손 등 신체일부로 보이는 유골이 발견된 것이다. 이는 사건현장을 훼손시킨 대구시와 검찰, 경찰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켰고, 유족들이 급기야 대구시장을 고발하려는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사건현장 보존문제에 대해 언론도 자유로울 수 없다. 사건현장 훼손은 공무원의 상급자에 대한 그릇된 관행에서 시작됐다. 사고 다음날부터 이어진 정치인과 노무현 대통령의 현장 방문을 앞두고 이들에 대한 배려로 현장 보존보다는 청소가 더 중요하다는 판단을 했던 것이다. 언론은 이런 문제를 예견하고 현장 보존을 강하게 주장했어야 했다. 특히 대구지역 언론은 지난해 가을 개구리소년 유골발굴 당시 현장 보존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하는 보도를 끊임없이 했던 경험이 있었지만 이번에도여전히 현장 보존이 중요했었다는 식의 뒷북 보도와 왜 수사기관과 행정기관이 현장을 치웠나 하며 책임을 은근슬쩍 떠넘기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번 대형사고에서도 지역 방송사들은 재난방송을 위한 초기대응에 실패했다. 대구지하철 중앙로 역에서 시커먼 연기가 치솟을 때부터 사고 현장 주변 시민들은 물론 첫 자막방송 이후 많은 대구시민들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의아심을 갖고 방송에 눈과 귀를 기울였지만 재난방송 주관방송사를 비롯한 공중파 방송 3사는 서울 본사(?)로부터 허락을 받고 재난방송을 편성하느라 사고 발생 5~6시간이 지나서야 재난 방송을 시작했다. 지방분권 시대, 지역방송사들의 자율적인 편성권한이 없다는 현실은 신속한 재난방송을 가로막았고 앞으로 개선돼야 할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