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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받을 권리와 의무 있지 않나요?"

동아 박재역 기자 수년째 장애인 이동봉사

전관석 기자  2003.03.0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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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장애인 쉼터’ 만들고 싶어



“거창하고 내세울 만한 일이 아닌데…”

바쁜 일상을 쪼개 중증장애인들을 병원으로 실어나르는 선행을 베풀고 있는 동아일보 어문교열팀 박재역 기자는 인터뷰 요청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내에게 ‘별 것도 아닌 일을 왜 소문내고 다니느냐’며 핀잔만 들었다”는 박 기자는 인터뷰 중에도 “도대체 누가 알려주었느냐”고 거듭 물었다.

“스스로 소개하기 보다 장애인들의 애환을 널리 알린다는 취지”라는 사족을 붙이며 인터뷰에 응한 박 기자는 “장애인은 봉사받을 권리가 있고 비장애인은 봉사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 아니냐”며 말문을 열었다.

대구에서 교편을 잡다가 96년 상경, 동아일보 어문교열팀에서 일하던 박씨가 장애인 봉사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집 부근에서 조그마한 인쇄소를 운영하던 장애인 함모씨를 만나면서부터다.

“처음 만날 때만 해도 크게 불편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글쓰기를 좋아해 컴퓨터 자판도 제법 잘 두드렸으니까요.”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함씨의 몸은 뻣뻣하게 굳어갔다. 함씨가 앓고 있던 병은 진행성 근육이완증. 근육이 서서히 굳어가는 중병이었다. 함씨 몸이 점점 뒤틀려 컴퓨터 앞에 제대로 앉지도 못하는 것을 보면서 박 기자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이후부터 함씨의 소개로 ‘초록 장애우 이동 봉사대’ 회원으로 등록해 지금까지 매주 2회 이상 장애인 봉사를 하고 있다. 중풍, 디스트로피, 뇌성마비 등 중증장애인들을 태우고 병원에 갔다가 다시 이들을 집까지 태워다 주는 일이다.

보람과 함께 시련도 있었다. 그가 봉사하는 장애인들은 중증이어서 죽음의 문턱에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뇌성마비로 고생하면서도 박씨를 유달리 좋아하던 여자아이, 100kg이 넘은 큰 체구로 늘 박씨를 버겁게 하던 중풍 할아버지 등이 숨을 거뒀을 때 박씨는 아내를 붙잡고 며칠을 눈물로 지샜다고 한다.

박 기자는 장애인에 대한 관심에 인색한 언론을 향해 한 마디 했다.

“언론에서 많은 관심을 보여야 합니다. 오죽하면 장애인들이 쇠사슬을 묶고 지하철 선로에 뛰어들겠어요. 우리나라 장애인 정책은 그야말로 낙후돼 있습니다. 정부에서 중점시책으로 시행할 수 있게 언론이 역할을 해줬으면 합니다.”

박 기자의 생각은 퇴사 후에도 ‘장애인 봉사’에 맞춰져 있다. 아빠의 봉사활동을 늘 거들던 딸아이가 고3이되면서특수교육과에 진학하겠다고 밝힌 것도 박 기자를 흐뭇하게 했다. 박 기자는 장애인들이 편히 와서 쉴 수 있는 ‘장애인 쉼터’를 만드는 게 꿈이다.

“장애인을 대하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이 참 아름답습니다.”

급하게 걸려온 휴대전화로 장애인 이동계획을 전달받은 박 기자가 남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