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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윤전기 철거하라"

국민의 힘·조아세, 3·1절 맞아 독립기념관서 시위

전관석 기자  2003.03.0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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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이른 아침. 천안 독립기념관에 일단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아직 시민들의 발길이 뜸한 가운데 이들은 아이들에게 나눠줄 풍선에 바람을 넣기도 하고 현수막과 선전물을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하고 있었다. 이들이 준비해온 선전물에는 “조선일보 윤전기를 독립기념관에서 철거하라”는 주장이 담겨있었다. 이들은 지난달 27일 기자회견에서 “기중기를 동원해 독립기념관에 전시된 조선일보의 윤전기를 철거하겠다”고 밝힌 ‘생활정치 네트워크 국민의 힘’과 ‘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세상’(조아세)회원들이었다. 통합을 선언한 두 단체의 첫 번째 공동사업이기도 한 이날 행사는 전국에서 200여명의 회원이 참여했다.(사진)

기자회견에서 공언했던 대로 기중기도 기념관 한쪽에 자리잡았다. 꼭대기에는 “독립기념관인가 친일기념관인가”라는 대형현수막이 펄럭였다. 시간이 지나 방문객들의 수가 늘어나자 이들은 구호로, 노래로, 대화로 윤전기 철거의 정당성을 알리기 시작했다. 일부는 한켠에서 친일보도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행사에 참여한 경기 민언련 이민우씨는 “조선일보가 친일보도에 열중하던 시절 신문을 찍어내던 윤전기가 독립기념관에 전시돼 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면서 “독립기념관측은 즉각 윤전기를 빼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후 12시. ‘철거’ 퍼포먼스가 시작됐다. 회원들은 안전모를 쓰고 ‘철거’완장을 찬 ‘철거반원’들을 앞세우고 윤전기가 전시돼 있는 사회문화운동관으로 향했다. 전시장에 도착해 ‘철거반원’들이 윤전기에 올라가 밧줄을 묶어 내리자 회원들이 모두 밧줄을 끌어당기는 액션을 취했다. 윤전기는 꼼짝하지 않았지만 “윤전기를 철거하라”는 회원들의 목소리는 컸다. 서울에서 아이들과 함께 기념관을 찾았다는 박시혁씨는 “일제시대에 언론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조선일보가 친일보도를 했던 시기에 사용했던 윤전기를 독립기념관에 전시한 것은 잘못된 일이라 생각된다”고 말했다.

퍼포먼스를 끝낸 회원들은 이문원 관장과의 면담을 위해 본관으로 이동했으나 이 관장의 부재로 성사되지 않았다. 임병구 조아세 대표는 “윤전기를 그대로 전시하는 것은 독립기념관장의 직무유기라고 생각한다”면서 “조선일보를 통해 윤전기 철거요구가 부당하다고 주장한 이 관장에 대해 민형사상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아세회원들이 관장 면담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조선일보 취재기자와 회원들간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들의 시위는 늦은 저녁까지 계속됐으며 이후 광복절, 의사 거사일 등 민족 기념일마다 독립기념관에 모여 윤전기 철거를 요구하기로 했다.

한편 윤전기 철거요구가 거세지자 독립기념관측이 이에 대한 전향적인 의사를 밝혀 주목된다.

박걸순 학예실장은 “전시에 보다 신중했어야 한다는 시민단체의 문제제기와 조언은 받아들인다”면서 “이르면 3월중에 자문위원회를 개최해 윤전기 문제에 대해 심도깊은 논의를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독립기념관은 지난 92년 작곡가 홍난파의 일제시대 행적을 문제삼아 그의 바이올린과 친필악보 등을 전시관에서 제거한 바 있으며 민족대표 33인중 친일행각으로 논란을 빚어온 박희도 정춘수 등 2명의 전시물 약력에 친일행각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전례도 있다.

전관석 기자 sherpa@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