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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다시보기] 성(性)인지적 기사를 보고 싶다

언론다시보기  2003.03.1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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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명숙 이프 편집위원/ 작가



성(性)인지적 관점이라는 게 있다. 간단히 말해 모든 정책이나 제도, 사회현상 등을 양성평등의 관점에서 분석해 문제점과 대안 등을 제시하는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우리사회에서 새롭게 거론되고 있는 성인지적 정책이니 젠더 예산이니 성인지적 통계니 하는 말들은 이런 성인지적 관점이 통합된 것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성인지적 관점은 정책이나 예산 등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정부의 정책 못지 않게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언론에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기자들이 기사를 작성할 때 이런 관점을 통합시킨 성인지적 기사를 쓸 수 있게 된다면 우리사회의 양성평등에 대한 감수성은 그만큼 예민해지고 사회발전도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사의 질도 높아지고 다양성에도 기여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참여 수석을 비롯해 청와대 비서실에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많은 여성들을 기용했고 새 정부 첫 내각에도 여성장관을 4명이나 등용했다. 최초의 여성 법무장관도 탄생했다. 그만큼 고위 공직에서 여성들의 역할이 늘어난 것이다. 그에 따른 공직사회의 충격과 변화 분위기, 한국사회에서 이같은 변화가 가지는 의미 등은 역사적인 것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우리 언론들은 이를 제대로 짚어내는데 많이 미흡한 것 같다. 물론 어느 정도 언급들은 됐지만 숫자가 얼마 늘어났고 처음으로 힘있는 부서에 여성장관이 임명됐다는 정도의 피상적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성인지적 관점이 그만큼 미약하다는 얘기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일부 기사나 만평 등에서 아직도 여성장관을 장관이기보다 여성으로 보며 차별적인 묘사를 하고 있는 수준이다.

강금실 장관이 법무장관으로 임명된 데 대해 검찰은 거센 반발을 보였다. 그 배경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녀가 여성이라는 점도 상당 부분 은밀하게 작동했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 내부 통신망에 ‘법무부가 여성부냐’는 비아냥이 올라왔다고 하지 않는가? 이번 검찰 인사파동은 ‘여성’ 법무부 장관과 어떤 상관관계를 맺고 있고 그것이 그려내고 있는 한국사회의 양성관계는 어떤 모습일까?

강 장관의 인사방침에 검찰이 집단적으로 반발하자 노 대통령은 자신이 직접 평검사들과 대화에 나섰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 토론회가 의미있는 것이었고 노 대통령의 대응도 설득력있는 것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매우 찜찜했다. 노 대통령 옆에 앉아 있는 강 장관이 꼭 노 대통령의 피보호자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물론 노 대통령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는 저간의 사정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쨌든 그날 토론회 모습에서 나는 대통령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여성장관, ‘남성에게 의존해야 하는 여성’의 이미지를 지우기 힘들었다. 그 토론회를 강 장관 혼자 감당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그 똑똑하다는 여자가?

최근의 검찰 파동을 지켜보면서 여성의 시각에서 제기됐던 의문들이다. 그러나 어느 언론도 이런 의문에 대해 시원한 해답을 주지 못했다.

사족 한 마디. 한 유력 신문에 실린 사고에 의하면 3월 중순에 그 신문사가 주최하는 국제마라톤 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그런데 우승 상금이 남자는 5만 달러, 여자는 2만 달러다. 왜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일까? 궁금해 죽겠는데 어디에도 합리적 설명이 없다. 내가 이 사고를 본 날은 세계여성의 날인 3월 8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