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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해소' 보다 '갈등관리' 바람직

[책으로 본 미디어 세상] 정부와 언론

책으로 본...  2003.03.1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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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락 전 기협 편집국장





지난달 말 취임한 새 대통령이 언론에 대해 이전과 다른 관계를 형성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실천 지침으로 가판 구독 금지와 ‘양주 파티’ 금지를 밝혔다. 언론계는 환영과 우려가 뒤섞인 분위기다.

정부와 언론의 관계는 모범답안이 없는 영원한 숙제다. 언론 규범으로 접근하는 방법이 있긴 하다. 불가근 불가원, 견제와 책임 등등…. 원론에는 쉽게 합의하지만 구체적인 상황에 이 원론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합의점을 찾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정부와 언론>(유재천 이민웅, 1994년, 나남출판)은 정부와 언론 관계를 결정하는 요인, 관계의 유형, 변천, 그리고 바람직한 모습을 논하고 있다. 지은이는 정부와 언론의 관계란 견제적 관계와 공생적 관계 사이에서 진자운동을 하는 관계라고 규정한다.

지은이는 진자 운동 궤적 상의 위치가 정부와 언론에 의해서만 결정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국민의 동의 수준이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이다. 정부 정책에 대한 동의 수준이 높으면 공생적 관계가 강화되고 동의 수준이 낮아지면 견제적 관계가 강화될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이 책의 특징은 정부-언론 관계의 실상과 바람직한 모습을 파악하기 위한 방법에 있다. 먼저 구체적인 연구 과제 및 방법론을 결정하기 위해 장관 등 고위 공직자 7명과 언론사 간부 7명, 학자 8명이 참석한 토론회를 진행하였다. 토론 결과를 가지고 중앙부처 과장급 이상 500명과 서울 언론사 언론인 360명을 설문조사하였다. 여기에 더해 설문조사로 알아보기 힘든 속내를 파악하기 위해 중앙부처 국장급 이상 13명과 언론사 편집국장과 논설위원 12명을 상대로 심층인터뷰를 실시했다. 그 결과 공직자와 언론인은 언론의 역할에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바람직한 정부-언론 관계에 대해서도 인식 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공직자와 언론인 사이에는 메우기 힘든 불신의 골도 있었다.

지은이는 결론으로 갈등을 해소하기보다 갈등을 관리하는 접근방식을 선택해야 한다고 권한다. 정부와 언론이 서로 독립성을 유지하며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활동을 충실히 수행하면, 견제와 공생 사이의 진자운동을 통해 우리사회가 추구하는 공통의 목표를 구현하는데 이바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정부-언론 관계를 규범적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접근해 정부-언론 관계에 대한공직자와 언론인의 속내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특히 고위 공직자와 언론사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토론회와 심층 인터뷰는 정부-언론 관계에 대한 실질적인 고찰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특성이 역동성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책이 김영삼 정부 당시의 기록이라는 점이 조금 걸린다. 하지만 정부-언론 관계가 진자운동 관계라는 지은이의 규정을 떠올린다면 어차피 이 기록도 진자운동 궤적의 한 지점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현실을 설명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부-언론 관계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시점에 바람직한 관계가 무엇인지 진정으로 고민한다면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