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의 언론개혁이 시작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지난 주 문화관광부가 단행한 취재시스템 개편 중 일부 사항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 자신이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노 대통령은 17일 문화부측이 언론에 대해 취재원 실명 표기를 요구한 것과 관련해 “취재원 보호 원칙은 언론사의 재량권이며 그것은 스스로 판단해서 해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 ‘취재원(공무원)이 기자와의 면담 내용을 상부에 보고해야 한다’는 데 대해 “그게 되겠느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문화부는 청와대에 이어 정부 부처 중 가장 먼저 취재시스템 개혁을 단행한 부서다. 게다가 이창동 문화부 장관은 개편방안을 발표하면서 언론관에 관한 한 자신은 ‘노 대통령의 분신’이라고 말했다. 비록 일부 사항에 관한 것이긴 하지만 그 ‘분신’의 말을 대통령이 단 며칠만에 뒤집어버렸다는 것은 예사롭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이같은 개혁조치에 대해 야당인 한나라당은 물론 조중동 등 거대 보수언론, 그리고 보수적 시민단체까지 언론자유 침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언론인 출신으로 한나라당 언론대책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하순봉 최고위원은 이번 조치를 유신 직후의 기자실 폐쇄에 빗대면서 “헌정 50년 중 지금이 가장 언론의 암흑기”라는 극언까지 했다고 한다.
한나라당과 조중동의 반응에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생래적 반감이 초래한 과잉반응의 측면이 분명히 있다. 특히 하순봉 위원의 발언은 완전히 넌센스다. 언론자유에 관한한 우리는 이미 김대중 정부 때부터 해방 이후 최대한의 자유를 구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중동은 물론 거의 모든 언론들이 이번 조치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일차적 책임은 노무현 정부측에 있다. 그리고 그 원인을 따져 들어가면 설익은 아마추어리즘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청와대의 브리핑제도에 대한 기자들의 불만이 높은 것은 대변인이 기자들의 궁금증을 제대로 풀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정무, 민정 수석 등이 줄줄이 불려나와 기자들을 상대하는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 기자들의 비서실 취재를 제한하고 공개브리핑만으로 취재를 대신하게 할 정도가 되려면 대변인이 청와대 돌아가는 사정에 훤해야 한다.
청와대 대변인의 미숙함은 시간이 지나면 고쳐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서당분간 참아줄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이번 문화부의 조치는 언론의 ABC도 모르는 몰상식한 처사다. 세계 어떤 언론 치고 취재원을 반드시 실명으로 표기하는 언론이 있는가. 그동안 우리 언론이 ‘정부 고위 관계자’ ‘관련 전문가’ 등 익명을 빌미로 작문성 기사를 남발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정부가 언론에 대해 취재원 실명을 요구하는 것은 분명 월권이다.
기자와의 면담 내용을 보고하라는 것은 더욱 웃기는 얘기다. 공무원은 공무원이기 이전에 국민이다. 그들도 다른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표현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면담 내용 보고는 그들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예술가 출신의 이창동 장관이 그런 발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필자는 노무현 정부 언론개혁의 궁극적 목표가 정부와 언론이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것, 그리고 정보접근권에 관한 언론사간 차별을 없애겠다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전폭적으로 동감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식으로는 결코 이같은 목표에 다가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혹시 노무현 정부는 자신들만이 옳다는 독선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언론에 대해 보다 정교하고 치밀하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태도를 가질 것을 요구하고 싶다. ‘선무당 사람 잡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