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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취재 자유 심각한 위협

검사, 비판 사설에 소 제기· 경관, 비리보도 기자 경찰에 제소

김일/김경태  2000.11.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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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을 담당하는 검찰과 경찰이 언론의 비판적 보도에 소송과 고소로 맞서는 일이 잇달아 발생, 해당사뿐 아니라 언론계와 학계·시민단체 등에서 언론자유 위협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특히 이들 기관이 반론 청구나 언론 중재와 같은 절차도 생략한 채 검찰은 같은 사법 식구인 법원에 소를 제기하고 경찰관은 아예 경찰청에 고소하는 사태는 권력 남용이자 언론 통제를 위한 횡포라는 의견이 집배적이다.



먼저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을 수사한 서울지검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훈규 특수1부장) 소속 검사 12명 전원은 지난 6일 조선일보사와 정중헌 논설위원을 상대로 36억원의 손해배상과 정정보도 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냈다. 검사들은 소장에서 "조선일보 7월 31일자 '검찰의 감청의혹' 사설에서 특별수사본부가 휴대전화를 감청 또는 도청했다는 취지로 허위보도, 검사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7월 31일자 가판 사설에서 검찰의 감청의혹을 제기했다가 검찰의 문제 제기와 법조팀의 자문 결과 서울시내판에는 도청 가능성을 제시하는 내용으로 바꾸었다. (본보 8월 2일자 참조)



하지만 조선일보는 검찰의 소 제기가 단순히 이 사설 때문만은 아니라고 분석했다. '감청 의혹' 사설이 나가기 1주일 전인 25일자 '진씨 계좌 왜 뒤지나' 사설의 지적에 대한 '보복성'으로 보고 있다. 그 사설은 "기관 이기주의를 위해서는 어떤 무리도 불사하며 미리 죄를 만들어 놓고 수사하는 방식은 언젠가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도 있고 자신들도 그 덫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11일 본보에 전달한 공식입장을 통해 "보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자신들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통로로 언론중재위원회라는 제도적 장치가 있다"면서 "그런 절차를 밟지 않고 곧바로 손해배상 소송을 낸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국가권력기관이 '의견'의 영역에 해당하는 사설 내용을 상대로 36억원이라는 거액의 배상을 요구한 것은 상례를 벗어났다고 본다"며 "이번 소송이 국가권력기관에 의한 새로운 형태의 언론 견제로서, 자칫 신문의 건전한 비판을 제약하는 결과를 낳게 될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언론중재위 절차를 밟지 않은 것에 대해 소송에 참여한 이귀남 특수3부장은 10일 "꼭 거쳐야 하는 것이아니어서였다"고이유를 밝혔다. 이 부장은 이어 "이번 소송이 검찰 전체의 뜻이 아니다"며 "잘못된 보도로 인한 피해 보상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기소권을 움켜 쥔 검사들의 소송 청구 사례는 올해 들어 급증하는 추세이다. 지난 2월엔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가 KBS를 상대로, 3월에는 수원지검 성남지청 검사가 MBC를 상대로 5억원씩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또 4월엔 서울지검 남부지청 검사 22명이 MBC를 상대로 11억 원의 소송을 제기했다.



한편 전주북부경찰서 소속 경찰관 2명은 전주MBC가 8월 을지훈련 기간중 상황실에서 음주를 하고 있는 장면을 보도하자 지난 2일 "경찰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상황실에 무단 침입했다"며 취재기자를 상대로 공무집행방해와 현주건조물 무단침입 혐의로 전북경찰청에 고소했다.



전북기자협회(회장 김은태)와 경찰출입기자단은 "경찰이 조직적으로 언론을 길들이려는 작태"라고 비난했으며, 전북시민운동연합(의장 전봉호) 등 10여 개 시민단체들도 성명을 통해 "취재과정을 문제삼아 기자를 고소한 것은 시민의 알권리를 침해한 중대한 사태"라며 소 취하를 요구했다.



그러나 김용백 전북경찰청장은 "정체가 모호한 시민단체를 동원해 논평과 성명을 발표하게 하는 것은 공기업이 아닌 사기업이 하는 일"이라면서 "언론들이 공동으로 대응하면 공동으로 망신당할 것"이라고 말해 파문을 확산시켰다.



또 전북지역 관공서와 시민단체 등에는 '공정한 방송보도를 촉구하는 전주북부경찰서 경찰관의 모임' 명의로 "당시 위문차 방문한 사람들이 사다준 통닭과 음료수를 야식차 먹고 있었을 뿐이고 소주 1병을 따서 따라놓고 마시지도 않았다"고 주장하는 문건이 나돌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전북도내 각 대학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구성된 호남언론학회(회장 권혁남 전북대 교수)가 10일 기자회견을 열어 "경찰이 취재 기자를 고소한 것은 언론자유를 위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경찰은 기자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고 국민의 안녕을 책임지는 공복의 역할에 충실할 것"을 요구했다.



특히 MBC에 이어 조선일보를 상대로 한 검사들의 집단 소송은 사설을 문제삼아 논평의 자유를 옭죄고, 언론중재위 절차를 생략한 거액소송이란 점에서 언론의 비판 기능을 제약하려는 의도로 비쳐지고 있다. <우리의 주장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