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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다시보기]'언론 지침'과 언론 반응

이재경 교수  2003.03.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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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이창동 장관이 문화관광부 공무원들에게 제시한 대 언론 지침은 아무리 봐도 단견의 산물이다. 설사 좋은 뜻으로 기획됐어도 취재를 제약하거나 거부한다는 느낌을 주는 부정적 측면을 허술히 생각한 문제가 심각하다.

지금은 비밀업무가 대부분인 국방부 장관이나 국정원장이 그러한 지시를 내려도 문제가 될 만큼 열린 커뮤니케이션의 시대이다. 하물며 언론을 주요 관장업무로 하는 장관이 앞장 서 그러한 정책을 천명하는 일은 자칫 새로 출범한 정부 전체가 폐쇄주의를 기조로 운영된다는 잘못된 느낌을 전달할 위험이 크다.

정보가 흐르지 않는데 어떻게 대통령이 강조하는 토론공화국이 가능한가. 대통령은 국민을 빼놓고 공무원끼리만 토론을 하자는 뜻이었는가. 이 장관의 지침은 크게 기자실을 브리핑룸으로 바꾸자는 내용과 기자들의 개별 사무실 방문제한, 그리고 공직자들이 기자를 접촉한 뒤에는 반드시 그 사실과 대화내용을 보고해야 한다는 세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이 지침들 가운데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두 번째와 세 번째 내용이다. 왜냐하면 이는 원천적으로 공직자들에 대한 불신이 전제되고, 언론에 대해서는 적대감마저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원천에서부터 정보를 차단당하게 되는 국민들일 수밖에 없다. 장관의 이러한 지침은 공무원들의 입을 막을 것이고 그만큼 정부가 하는 일은 더욱 비밀주의에 빠지게 될 위험이 크다.

문화부 지침에 대한 대부분 언론의 반응 또한 지나치게 아전인수격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기자실을 브리핑 룸으로 바꾸고 폐쇄조직인 출입기자단을 개방하는 일은 어떠한 관점에서도 언론탄압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50여년 간 기자실이 폐쇄적으로 운영돼 발생한 부패사건과 투명하지 않은 향응, 정보의 왜곡, 구조적인 권언유착의 폐해는 이제 한국적 취재관행이 혁명적으로 바뀌어야 할 때임을 역설적으로 입증해온 것이 사실이다.

공무원에 대한 취재제한 조치도 언론의 관점에서는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을 생각할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이 장관의 조치에 언론이 반발하는 핵심적 이유는 결국 기사거리가 관청으로부터 제공되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이다. 그러면 지금까지 관행으로 하면 기자는 쓸 기사가 없어지고, 신문은 지면을 채우기가 어려워진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이러한 언론의 반응은 감시견이기를 포기한 애완견의 자세를 전제로 한다. 1980년대 한국 언론은 90% 이상의 기사를 정부취재원에 의지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었다. 최근의 조사들도 80% 이상이 관급 기사임을 제시한다. 이번 기회에 이러한 관급 보도 관행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다. 처음에는 조금 어렵겠지만 결국 취재원이 다양해지고, 사실확인이 철저해지는 긍정적인 효과를 얻으리라고 믿는다. 기자가 독자의 시각에서 기사를 보는 취재자세가 강화되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긍정적인 부수 효과이다. 재미있는 일은 그렇게 되면 이제는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기사에 반영하기 위해 거꾸로 적극적인 로비를 시도하게 되리라는 사실이다. 이 장관이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이렇게 되면 그야말로 새 정부가 불리기를 원하는 참여정부에 맞는 참여적인 보도의 시대가 열릴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