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이수형 기자는 뛰어난 기자인 것 같다. 많은 특종상을 받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쓴 책 <오프 더 레코드>(프레스21, 2001, 9,800원)를 읽어보면, 그는 남들이 간과하는 사실을 끈질기고 치밀하게 추적하는 근성을 가진 것 같다. 그는 억울한 판결의 피해자 구명을 위해 뛰기도 한다. 그런 그가 쓴 책의 제목이 왜 하필이면 ‘오프 더 레코드’일까? 독자를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이 관행이다. 사건이 있고 기자에게 진실이 알려지지만, 독자는 찬밥신세가 된다. 기자들은 ‘당신들에게 더 크고 더 중요한 진실을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안심을 시킨다. 그래도 독자는 불안하다. 많은 사실들이 때늦은 후에야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식으로 밝혀지기 때문이다.
책은 의정부지청 한 직원이 피의자 영장청구 사실을 저자의 호출기에 남긴 이야기로 시작된다. 저자는 담당 검사 집을 찾아간다. 그 달 들어 세 번째였다고 한다. 자정이 넘은 시간, 검사 집 2층 방에서 그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특종을 한다. ‘친구처럼 지내는 검사’가 알려준 사기사건 참고인에 대한 정보로 연예인 매춘 사건을 보도하기도 했다. 법조 담당 기자에게 검찰 내부 인사와 맺은 친분과 신뢰는 중요한 자산이다. 수사 내용을 남보다 빨리 보도하는 것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은폐·축소될 수 있는 사건을 밝히기도 한다. 하지만 언론의 비리 폭로로 수사가 시작되기 보단, 그 반대 순서가 주를 이루는 한국 언론의 틀을 깨는데, 이 방식은 한계가 있다.
이 책에서 드러난 한국 언론의 관행에서 무엇보다 염려되는 것은 취재원과의 일체감이다. ‘옷 로비 사건’ 담당 검사가 사표를 냈다. 그는 저자가 보기에 훌륭한 검사다. 저자는 동료와 함께 검사 집을 찾아가 새벽 3시가 넘도록 설득을 한다. 사표를 철회하라고. 동료기자는 “사표 철회하지 않으면 우리도 기자 그만하겠습니다”고 말하기도 한다. ‘심재륜 항명 파동’ 때 저자는 심 고검장의 성명서를 미리 볼 수 있었다. 그와의 친분과 신뢰 덕분이다. 그리고 “기자는 역사를 기록하는가, 아니면 역사에 참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후자를 택한다. 가판 특종이 가능했지만, 성명서 내용에 대한 조언으로 ‘기자 역할‘을 대신했다.
이 정도 관계였다면, 저자가 검찰기사 혹은 적어도 해당 사건기사를 회피했어야하지 않을까? 판사의 제척·기피·회피 제도가 판사를 부도덕하거나 무분별하다고 보기 때문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 인식과 판단의 주관성에 대한 성찰의 결과다. 보도 역시 재판의 한 절차다. 여론은 재판의 원형이며, 많은 경우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책을 읽으며 ‘오프’가 적지 않은 경우, 기자와 취재원이 너무 가까워진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의 저자가 기자인지 검사인지 분간되지 않는 부분도 많았다. 독자에게 사실을 감춘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는지 남 모르는 사실을 아는 것을 자랑하는지 알기 힘든 대목도 있었다. 저자가 훌륭한 기자라는 사실에는 의심이 없다. 하지만 거리 두기에는 실패한 것 같다. 그것은 이 책 저자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기자는 진실을 위해 보도하는 사건이나 대상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 ‘좋은 일’ ‘좋은 사람’과도 거리를 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