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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이라크전과 한국 언론

김성택 한경기자  2003.03.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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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택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미국의 이라크공격을 둘러싸고 반전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 중국은 물론 프랑스 독일 등의 서구 국가들도 전쟁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조차 성조기를 불사르는 모습이 등장했다. 국내에서도 시내와 여의도를 오가며 시위가 열리는 등 반전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히면서 국익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임을 거듭 강조했다. 이라크전 이후에 제기될 북핵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있어서 미국의 협조적인 태도를 끌어내기 위해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사정이 발표문 행간에 숨어 있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아 하는 분위기가 역력해 안쓰러울 정도다.

취임직후 미국에 대해 할 말은 하겠다고 당당히 밝혔던 노 대통령. 그의 ‘코드’로 보자면 미국의 명분 약한 전쟁은 결코 찬성할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명분보다는 국가의 실질적인 이익을 선택했다. 우리가 처해 있는 객관적 현실이 그만큼 간단치 않다는 것이다.

미-이라크전을 둘러싸고 각국이 다양한 찬반의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자기들의 이익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은 이라크전을 통해 석유산업과 군수산업의 패권강화를 노리고 있다. 프랑스는 이라크에서 획득한 석유산업 기득권 때문에, 러시아는 중동지역에서의 영향력 강화를 꾀하기 위해 미국에 반대하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분명한 것은 각국이 자국의 이익챙기기에 급급한 냉혹한 현실에 우리 민족이 맞닥뜨려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전쟁에서 힘없는 쿠르드족은 미국-이라크-터키의 틈바구니에 끼여 앞날이 위태위태한 지경이다. 강대국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고 경제가 대외무역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우리 민족도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이 같은 국제적인 각축전 속에서 우리 사회의 각 분야는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오래전 한 기업인은 “기업은 2류, 행정부는 3류, 정치는 4류”라는 발언을 했다가 치도곤을 당했었다. 지금도 이 같은 평가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대기업은 SK사태 등으로 노무현 정부 들어 첫번째 타깃이 됐지만 다른 분야에 비하면 국제경쟁력을 갖춘 편이다. 행정부는 실력있는 인재들이 모여 있으나 개혁의 속도가 더디다.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으면서 책임은 거의 지지않는 정치권의 개혁은 지난해 대통령선거전의 핫 이슈였지만 지금은 안개 속이다.

그러면 우리 언론은 어떤가. 조자룡이 헌 칼 쓰듯 기업 정부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하는데는 선수지만 이들보다 조금도 나아 보이지 않는다. 갖고 있는 힘만큼 책임감을 느끼지 않으며 독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변화하려는 노력이 미약하다. 요즘 언론계에서는 정부의 신보도지침이 논란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신보도지침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언론계가 스스로 개혁을 미루다 외부로부터 강제적인 개혁요구에 직면한 현실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