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로 씨 가석방에서 귀국에 이르기까지의 취재를 끝내면서 극히 제한된 취재원이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정보가 오보를 낼 수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특히 정보 제공자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가공한 흔적마저 있는 정보에 언론이 쉽게 놀아날 수 있다는 뼈아픈 경험을 했다.
권씨 석방 및 귀국과 관련한 정보를 사실상 독점한 인물은 S스님. 그는 권씨 가석방의 주역. 일본 법무당국이 권씨에게 한국에 돌아가 S스님과 생활한다는 각서를 받고 가석방을 결정했을 정도다.
그는 지난해 말부터 한달에 2번꼴로 권씨를 면회, 일본 법무당국과 형무소측한테서 석방 시기와 석방 절차 등을 가장 먼저 통보받았다. 특히 일본측이 권씨가 가석방되는 날까지 가석방과 관련한 어떠한 공식 정보도 내놓지 않아 그의 정보 독점력은 더욱 위력을 발휘했다. 권씨 가석방 관련 정보를 얻으려고 그에게 매달리지 않은 일본 언론이 드물었을 정도였다.
그가 제공한 정보 가운데 사실과 동떨어진 대표적인 사례는 권씨의 신변안전과 방탄조끼 문제.
그는 6일 일본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권씨가 엄청난 신변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오늘 아침에도 권씨가 비행기에서 방탄조끼를 입겠다고 말했다고 한다”고 목청을 돋우었다.
그는 또 “권씨가 죽인 야쿠자 두목의 아들격인 사람이 권씨를 죽이겠다는 엽서를 형무소로 보냈다”며 “늙은 그가 고국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그같은 생각을 버려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는 권씨 가석방 확정 사실을 통보받고 귀국한 직후 이미 야쿠자 조직의 협박 엽서를 소개했고 방탄 조끼 준비사실도 공개, 국내 언론이 보도했었다.
일본 기자회견에서 또 언급된 협박 편지는 그날 일본의 일부 언론에 보도됐다. 또 이처럼 강조된 권씨의 ‘신변 위험’은 결국 권씨의 귀국 후 철통같은 경호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비행기에 탑승한 권씨는 방탄조끼를 입지 않았다.
S스님은 “권씨가 고국에 가는 마당에 방탄조끼를 뭐하러 입느냐며 방탄조끼 입기를 거절했다”고 전했다. 권씨는 귀국해서는 “일본에서 나를 죽이겠다고 엽서를 보낸 사람은 절대 나를 해치지 못한다. 정말 나를 해칠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떠벌리지 않는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권씨가 귀국길에 S스님이밝힌만큼의 신변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는 증거다. 권씨의 신변 위험이 본인이 느낀 이상으로 부풀려지면서 과잉 경호 등의 폐해를 낳은 꼴이 됐다.
한복과 태극기 문제도 그렇다. S스님은 “권씨는 어머니가 만든 한복을 입고 태극기를 흔들며 귀국한다”고 몇 차례나 강조했다. 그러나 기내의 권씨는 양복차림이었다. S스님 스스로 “권씨가 과시하기 위해 한복 입는 것을 싫어했다”고 전했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 태극기는 권씨가 아닌 S스님 손에서 펄럭였다.
권씨의 석방과 귀국을 지나치게 빛내기 위해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여러가지가 연출됐다는 의혹을 갖는게 기자 혼자만은 아닐성 싶다. “한국언론이 권씨를 지나치게 영웅시한다”는 일부 일본 언론의 지적에 대해서도 “아니다”라고 자신있게 항변할 수 없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권씨가 사람을 죽인 단순한 테러리스트인지, 아니면 일본인의 차별에 죽음을 각오하고 대항한 민족주의자인지에 대해서도 설득력있는 보도를 하지 못한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권씨는 자신의 말대로 ‘영웅이나 애국지사가 아니라 차별하고 괴롭힌 일본인에 대항해 평생 감옥에서 보낸 불쌍한 인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지 모른다.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은 그가 고국에서 정말 조용하고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지켜보는게 아닌가 싶다. 권씨가 고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캄보디아로 되돌아간 훈할머니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리라.